[일장춘몽, 그 후의 이야기]
삶은 때론 꿈 같고, 때론 영화처럼 흘러갑니다.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환하게 빛나는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조명이 꺼진 무대 뒤편에서, 고요히 숨죽이며 견뎌야 했던 날들도 있었지요. 잠시 "일장춘몽" 시 힌 소절을 읊조려봅니다.
<일장춘몽>
한때는
꽃잎처럼 화사했고,
햇살처럼 눈부셨다.
손에 쥔 줄 알았던
그 모든 순간들은
봄날의 꿈처럼
고요히 흩어졌다.
남은 건
희미한 향기,
그리고 가슴 한구석의 따스한 흔적.
우리는 안다.
그 모든 찬란함이
덧없었기에
더 깊이 남는다는 것을.
이 시처럼, 살아보니 인생이 참 덧없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때론 찬란함이 눈앞에 와 닿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순간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했지요.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엔 다 말하지 못한 마음 하나쯤은 품고 살게 됩니다.
쉽게 아물지 않는 마음,
그저 ‘지나갔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날들 말이에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지요.
아무리 화려한 꽃도 열흘을 넘기 어렵다는 말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찬란함도 언젠가는 지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 곧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수용의 시간과 통찰의 의미가 조금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쥐기보다,
무엇을 놓아야 더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배우고,
무엇을 이루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더 깊은 울림을 주는지를 깨닫게 되는 나이.
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추사 김정희입니다.
그는 조선 후기 정조와 순조 시대의 고위 관직을 지낸 후,
말년에 고요한 유배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세속적인 권력과 명예를 떠나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택한 그에게도
‘화무십일홍’의 의미가 깊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의 유배지에서의 삶은, 바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는 여정이었습니다.
그가 텃밭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얻은 고요함과 평온은 인간의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진정한 의미의 회복이었습니다.
특히 "세한도"라는 작품에 그가 담은 의미는
자연의 소박함과 인생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세속적인 번뇌와 욕망을 떠나, 결국 그가 찾은 것은 내면의 평화였으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였을 것입니다.
그의 삶처럼,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며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놓아도
그것이 우리를 온전히 자유롭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하루하루 나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느냐”고요.
그리고 저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답합니다.
“그래도 살아내는 이 하루가, 결국 나를 만든다고.”...
(작가의 말)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닿기를,
당신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단지 지나간 봄날의 꿈이 아니라,
지금의 당신을 아름답게 빛나게 해준
소중한 한 장면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 우풍 정영일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