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트롱거를 보며]
2019년 작품인 스트롱거를 보며
나는 오랜만에 쉽게 가시지 않는 감정과 마주했다.
영화의 시작은 평범했다.
마라톤 대회, 사람들의 웃음, 응원의 함성,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한 남자.
그날은 그저
좋은 하루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폭음이
그 모든 평범함을 산산이 부수어버린다.
눈앞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비명이 뒤엉키는 그 순간,
제프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두 다리는 사라졌고,
몸은 살아남았지만
삶의 일부는 그날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수술 직후,
그가 떨리는 손으로 적어 내려간 한 문장—
“나는 테러범을 보았다.”
그 문장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었지만,
그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스스로 붙잡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영웅’이 된다.
사람들은 그를 응원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생존을 기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가 밤마다 어떤 기억 속에서
깨어나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그날의 소리를 다시 듣고 있는지.
눈을 감으면
폭발의 순간이 되살아나고,
눈을 떠도
사라진 다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온전히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재활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었다.
의족을 끼고 한 발을 내딛는 일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과 절망을 동시에 끌어안는 일이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반복 속에서
그는 점점 스스로를 잃어간다.
“왜 나였을까.”
그 질문은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채
그의 안에서만 맴돈다.
곁을 지키던 연인은
지치지 않고 손을 내밀지만,
그 손을 잡아야 할 그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사랑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사랑을 받아낼 자신이 없는 상태.
결국 그는
가장 따뜻했던 존재에게조차 말한다.
“난 할 수 없어… 자신이 없어.”
그 말은 포기가 아니라,
이미 많이 무너져버린 사람의 고백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랑도, 자신도, 삶도
조금씩 놓아버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다시 돌아본다.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가 아니라,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것들을.
메이저리그 시구에 나선 날,
그는 사람들 앞에 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두려움 앞에 섰다.
그리고 공을 던진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처음으로
과거가 아닌 현재에 서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사람이 그를 부른다.
테러로 동생을 잃은 누군가.
그는 아무 말 없이
제프를 끌어안는다.
그 포옹은 위로이자,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말 없는 이해였다.
아마 그 순간,
제프는 처음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살아가도 된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떠났던 연인에게 돌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잡는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오랫동안 한 가지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단순히 숨 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생존’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삶을 선택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내 마음을 적셨다.
눈물은
어쩌면 슬픔이 아니라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때
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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