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4

며느리와 시어머니

by 정원

친구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손자를 보려 경남에서 서울까지 왔다. 길이 멀어 하루 아들집에서 잤다.

아들이 말하길. "엄마 우리 집에서 자니 애기 엄마가 불편해하네요".

그 친구는 바로 그날 집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도 자금까지 시어머니 살아계셔 한번 오시면 3박 4일 극진하게 대접하는 며느리였다.

우리 세대 샌드위치 세대, 시부모는 공경하고 며느리 도리 다했으나 시어머니 되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나 또한 그러했다. 시어머니 생신 당연한 며느리 의무였다.

결혼 후 첫 생신,제일 더운 7월 말이었다. 첫애 낳을 달이 다음 달이었다 당신 생신 며느리가 차려 주어야 한다고 날 불렸다. 만삭이라 배는 남산만큼 불렀다.

직장생활 후 결혼한 신혼 음식할 실력이 안되었다.

당신이 요리하시고 난 서서 왔다 갔다. 눈치만 보고 힘들었다.

동네 아줌마들 친척들 다 오셨다.

며느리 맞이한 첫 생신.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신 차려주어야 한다는 체면 차리느라 만삭의 며느리 벌 세운 것이다.

밤에 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고 , 시어머니는 "애기가 나올까 "걱정했다 들었다.

집에 내려와 열흘 후 예정일 보다 20일 일찍 첫애를 낳았다.

지금 생각하니 나 혼자 시댁에 갔었다.

참 말도 안 되었지만 당시 어머님 나이 49살

당신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며느리 맞이한 지 14년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여자도 직장생활이 당연한 요즘 그 애들 생활하기 정신없다.

직장 다니면서

애 둘 키우랴 집안일하랴. 난 그들 육아 도와주면서 반찬도 만들어 주었다.

생일 가만히 있는다. 밥 사주면 고맙게 먹고 바쁘면 축하 전화받고

나는 어머님 생신 때 좋아하시는 식재료 신선한 해산물등 사가지고 전날 가서 친지 불러 집에서 차려드렸다.

왕복 10시간 걸리는 거리 대중교통으로 오갔다.

남편이 못 가고 혼자 갈 때도 많았다.


50.60세대 급속한 변화의 시대였다. 중학교 입학시험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1년 전 무시험 전형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입시는 내가 마지막 입학시험 세대 다음 해 무시험으로 바뀌었다.

고도의 성장기,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을 살아왔다.

고부간의 의식변화 역시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토요일 며느리와 전화하던 중 , 어머니 잠깐 들러도 될까요? 4 식구 와서 저녁 먹고 반찬 가져갔다.

대접받는 시어머니가 아닌 며느리 대접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이 들어 체력이 떨어지니 자식들 온다고 하면 약속 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업주부 40년 넘으니 식구들 음식해 주는 것에 숙달되어

자식들 밥 해주는 것이 보람이자 즐거움이 되었으니 이 또한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모든 일은 끝이 있으니 이제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아니 줄이고 있다.

난 기운이 떨어지고 손자들이 자라니 시간이 없어서이다.


살아가는 내 육체도 시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무엇이 그대로 있으랴?

가족관계 고부사이 변화의 중앙에서 지켜볼 뿐이다

세상사 무상하다.

무상이란 항상 그대로인 것이 없다는 뜻.

변하는 건 당연한 세상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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