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1

by 정원

난 만으로 67세 우리나라 나이로 69세 결혼생활 43년차

남매를 두었고 그애들은 각자 가정을 이루어 독립하였다.

아들은 손자 둘 딸은 손녀 둘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

나 또한 큰 문제없이 남편과 지내고 있으니 외형상 다복하다 할수 있다


그러나 난 결혼생활 수행의 시간이었다.남편과 난 국내 여행조차 가본적이 없다 .해외는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열정적으로 나에게 구애하고 사람이 능력있고 착한인상에

결혼했는데 웬결 .능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 아니 기본 정서가 문제였다 .그는 불안증환자였다.

불안은 강박을 동반한다 .첫애를 낳았는데 애가 우는 소리를 못들었다.5초이상 울면 남편은 못견디어 했다.

불안한 것이다. 난 포대기로 업고 밖으로 나가 애를 달래었다.

엄동설한도 예외가 없었다.

문단속도 철저히 고리를 몇개씩 설치해 하나라도 빠뜨리면

화를 내었다 .두아이를 모두 남편앞에서 울리지 못하고 키웠다. 독박육아 그건 당연한 일 . 애들과 놀아주는건 없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강하였다. 그러나 늘 불안했다.

단 예외가 있었으니 술이 들어가면 기분이 좋았다.

억눌린 마음이 풀어져서 일것이다 .당시 술문화가 성했다. 직장 동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직장생활은 잘하였다.

다행히 술 주정은 없었다.

나도 결혼전 교직에 있었다 .결혼과 동시 전업주부였기에 남편 외조와 애들 키우는데 나의 모두를 바쳤다.

가정을 이루면 가족들과 여행하며 자연속 여유를 느끼는 삶 이 나의 꿈 이었다 . 그러나 그꿈은 허공에서 부셔졌다.

남편의 불안증은 내가 해결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투철한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천성이 맑은 그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건 이유가 있었다.

남편은 어릴적 불우하게 자랐다. 시아버님이 알콜중독자 셨다.술주사로 자식들 아들 삼형제를 학대하였다.

술먹고 집에 오면 시간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깨워 괴롭혔다.

앉아 일어서를 시키면서 매질도 하였다고 했다.

남편은 밤이 오는것이 두려웠다고 .그리고 어릴적 기억이 거의 없다. 힘든 상처였기에 무의식에 감추고 있는 것일까?

그때 자라야 할 정서적 뇌발달이 제대로 안된 것일까?

마음이 불안하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술을 먹으면서 긴장을 풀었던것 같다.

남편 다른 형제 둘 또한 비슷하였다. 시어머님 역시 자식들을 품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릴적 부모를 일찍 여위고 할머니께 팔자 세다고 구박 받으면서 성장기를 보내신 분.

당신도 불안하시고 애정 결핍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셨다. 생활력이 강하시고 천성은 착한 분이셨다.

남편은 성실하였고 능력도 있었기에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애들에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다.

내가 할수 있는건 남편과 부딪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거.

난 참으면서 남편 마음에 맞추어 사는 방법을 택했다.

시댁에 대한 의무도 다하였다 .시부모님에게 하는 안부전화도 내 의무로 알았다. 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행동은 조선시대 여자로 살았다.


결혼26년 과부화였던가? 위암3기 생존률50% 운좋게 살아 남았다. 남편은 말했다. 지금까지 남편 마음대로 살았으니 이젠 당신 마음대로 살라고.

그리고 아들 딸 결혼하여 손자 손녀 4명의 할머니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들 ,착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주는 기쁨도 많았지만 참고 견디어 내는 시간들이 더욱 많았다.

나에게 결혼생활은 인고의 시간들이었다.

원하던 시간들은 아니었으나 그속에서 난 정신적 성숙을 이룰수 있었다 .고독과 아픔이 부족한 나를 조금은 다듬어 주었다

남편은 결국 정년을 못채우고 퇴직했다. 우울증으로


생각하면 남편 또한 힘들었다. 불안한 정서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안스러운 맘으로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은 여생 얼마가 남았을지 모르지만

서로 부축하며 잘 마무리 하고 싶다.

결혼으로 얻은것과 잃은것은 무엇일까?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올수 없었을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투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