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닭

by 정원

아들은 10여 년 전 타운하우스 준 전원주택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전원주택 치고는 시내이다. 산비탈을 깎아 조성한 곳이다.

대단지 아파트 단지와 마주 보고 대형 마트도 5분 거리 대중교통도 좋은 곳이다.

그 애들에게 연년생 아들 둘이 있어 마당이 있는 주택을 선택한 것이다.

난 반대했다. 아들 부부가 직장에 다니는데 주택관리가 힘들 것이라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염려대로 잔디 잡초 제거는 내 몫이 되었고 취미를 살려

텃밭을 만들어 야채도 길러 주었다.

집 주변 꽃도 심어 환경 미화도 해 주었다.

집은 크지 않으나 마당이 넓어 사내 애들 뛰어놀기는 좋았다.


어느 날 손자들이 닭을 키우겠다고 하였다. 약식 부화기를 당근 마켓에서 구입해 유정란을 부화시켰다.

3마리용 5마리용이 있다. 전기에 연결해 두면 돌면서 위치도 바꾸어 주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21일 후 병아리가 탄생한다.

태어나고 거실 상자 안에 보온용 등도 켜주고 20 여일 키운 후 마당 잔디밭에 내놓고 키운다.

손자들은 삐약이 노랑이 얼룩이등 이름도 지어주고 애지 중지 키웠다.

병아리도 처음 보는 존재가 사람이다 보니 완전 애완닭. 사람을 엄마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암탉 수탉 그건 알 수 없다. 자라면서 모습에서 판별이 난다.

그런데 수탉이 문제다. 좀 자라면 울기 시작한다.

새벽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추어서.,

재미있는 건 수탉도처음엔 우는 소리가 이상하다. 사람도 사춘기 변성기 오는 것처럼 어설프고 목이 숸 소리가 난다.

자라면서 목청도 다듬어지고 모습도 멋있어진다.


그런데 이곳은 타운 하우스 옆집과 담도 없다.

새벽에 우는 우렁찬 닭소리는 수면방해 그야말로 민폐다.

저녁에 화장실에 가두고 해가 뜬 후 마당에 내놓았다.

수탉은 암탉을 보호하느라 공격성도 있어 손자들을

세게 부리로 쪼아 상처도 입혔다.

얼마 후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으로 입양을 보냈다.

암탉은 자라 알을 낳기 시작했다.

그 집에 가서 잔디 잡초를 뽑고 있으면 따라다니면서 내 등을 꼭꼭 쪼았다. 먹을 거 달라고. 안아주면 가만히 있다

낯선 사람이 오면 숨어 나오지 않는다.

머리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 비하하지만 닭도 지능이 있고

마음도 있는 거 같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그릴 위로 날아오르면서 고기를 달라고 한다.

알을 낳으려면 영양분이 많이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고기맛을 아는 건지 모르겠다.

닭을 기른 지 6-7년 그동안 여러 일들이 많았다.

길고양이 습격으로 부상당한 닭을 동물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1세대 삐약이는 알을 열심히 낳더니 똥꼬에 큰 혹이 생겨 죽었다. 손자들은 슬퍼하면 대성통곡을 했다.

내가 죽어도 재네들이 저렇게 슬퍼할까? 잠깐 생각이 들 정도로

장례식을 한다면서 무덤을 화단에 만들어 주고 십자가도 장식해 주었다.


요즘은 청계와 흰 닭 2마리를 키운다.

닭사료가 마당에 있으니 동네 참새들이 아침저녁으로 몰려온다. 많아 세워보니 60마리가 넘었다.

까치부부 비둘기부부도 가끔 보인다.

새들의 무료 급식소인 것이다. 닭보다 새들이 사료를 많이 먹는다.

박 씨 물어오는 건 기대 안 해도 밥값으로 복이라도 아들집에 주었으면 하는 속물적 마음도 가져본다.


큰손자는 닭을 기르면서 인생의 목표도 정해졌다.

산 란닭을 키우는 양계장을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나름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속으로 뭔 양계장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 또한 나의 고정관념인 것이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일 것이다.


닭을 기르면서 생명의 귀중함을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기를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손자들이 달걀을 모아 가져왔다. 산란일이 알마다 적혀있었다.

마음에 감동이 몰려왔다. 손자들이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을 먹을 수 있다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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