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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리 Jul 16. 2022

절망(A)

보통의 아이들

1.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곳. 사람은 많지만 외로운 곳. 즐겁지만 행복하지 않은 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은 무엇인가-가장 일반적인 것. 일반적인 것은 무엇인가-교과서적인 것. 가장 교과서적인 곳은 학교여야 한다. 도덕과 선만이 존재하며, 순결무구한 곳.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 그래야만 하는 곳. 그렇게 강요되는 곳.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머릿속에 진하게 남는 한 문장. 보통의 학교… 이곳은 보통의 학교가 아니다. 이곳은 내가 아는 가장 보통의 지옥이다.
 
 학교 앞 정류장에 선 버스는 수많은 아이들을 토해낸다. 똑같은 교복의 아이들은 한동안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 사이에 끼인 아이를 재촉하듯이 삐-하는 듣기 싫은 버스 벨 소리가 아이의 등을 떠민다. 제 표현을 하지 못하여 내리지 못 한 아이는 문을 사이에 두고 학교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그대로 다음 정류장으로 실려간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 메워진 교문을 수많은 다리들이 통과한다. 교문 앞에 정차한 k5에서 중3 도희가 내린다. 도희를 따라 운전석에서 젊은 남자가 내린다. 그는 교문 지도를 하는 교사들을 한껏 노려본다. 언제든지 공격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이. 아버지도 가족도 아닌 남자를 등지고 도희는 당당하게 교문을 들어온다. 도희는 중1 후배들에게 비슷한 남자들을 소개해 준다. 교재보다 성인과의 교제를 가까이한 그녀들은 즐겁다.
 
 민서가 2주일 만에 등교했다. 통통하고 귀여웠던 민서는 그사이 생기도 잃고 살도 잃고 왔다.
-살이 좀 빠졌다. 요즘 못 먹니?
-먹고 토해요.
민서는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행렬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열렬히. 민서는 그녀들과 어울리기 위해 담배를 바쳐야만 한다. 술을 사 와야 한다. 그녀들이 소지하다 걸린 담배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녀들은 그렇게 민서를 이용하고, 이용당한 민서는 그녀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녀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민서는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서는 오늘도 토한다.

-너 학교 졸업하고 어떻게 살고 싶니?
-지금처럼 자동차 훔치면서 살 거예요.
-행복하니?
-재미있어요. 그런데 행복하지 않아요.
민서는 미혼모의 엄마에게서 태어나 맞고 자랐다. 그녀는 알코올중독과 아동폭력으로 민서를 키우지 못한다. 문서 앞에서 동거남과의 성행위를 보여준다. 민서에게 물건을 던진다. 민서에게 전화한다.
-몸 팔아서 2천만 원만 구해줘.
 
 수업 시간에 해원이가 보이질 않는다. 보건실에도 상담실에도 해원이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지층부터 4층까지 화장실을 뒤지기로 한다. 쉬는 시간 아이들로 가득 찬 시끄러운 공간. 아이들은 일렬로 서서 거울 속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타종 소리에 아이들은 바퀴벌레처럼 재빠르고 말끔하게 사라진다. 아무도 남지 않은 공간은 온기를 잃고 차갑고 불쾌한 공간으로 변한다. 그곳에 해원이가 홀로 있을까 불안하다. 아이가 화장실에 홀로 있을 때 해피엔딩은 없다. 119신고로 마무리해야 한다. 다행히 해원이는 4층 화장실 좁고 어두운 한 칸에 앉아 있었다. 해원이가 사라지고 3시간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해원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해원이는 지금 나타난 것이다. 해원이가 나타난 교실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활기찼다. 아무 일도 없었듯이.
- 왜 혼자 거기 있었니?
해원이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녀는 왜 아이들이 많은 교실이 아닌 진한 외로움으로 불쾌한 화장실 비좁은 한 칸을 선택했을까? 그녀에게 교실은 화장실보다 외롭고 불쾌한 공간이었겠지.
 
 보통의 학교는 죽었다. 보통의 학교는 이상의 학교가 되고, 새로운 정의의 학교가 그 자리를 꿰찼다. 사람은 많지만 외로운 곳. 즐겁지만 행복하지 않은 곳. 우리는 이제 그것을 보통이라 불러야 한다. 이상을 보통이라 우기기를 멈춘다. 나는 이제 새로운 보통의 학교를 써간다. 그곳에서 보통의 아이들을 만난다.


2. 

탕- 김 교사가 수화기를 내던지듯 내려놓는다. 교무실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모든 교사가 김 교사를 쳐다본다. “김샘 괜찮…” “꽝!” 김 교사는 다른 교사들의 위로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교무실에서 도망친다. 시야를 뿌옇게 가리며 차오르는 눈물이 뺨으로 떨어지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핑그르- 김 교사가 앉아있던 사무용 의자가 제자리에서 돈다. 의자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김 교사의 통화 내용을 비꼬듯이 제자리에서 요란하기만 하다.
 
 본관 뒤편으로 숨어 들어간 김 교사는 이제서야 바닥에 무거운 눈물을 털어낸다. 툭-툭- 굵은 빗방울 같은 눈물이 시멘트 바닥 위로 떨어진다. 모래 알갱이에 찢긴 눈물자국에는 뾰족뾰족 가시가 돋쳐있다. 툭- 한 번도 본 적 없는 민서 엄마의 얼굴이 그려진다. 툭- 한 달째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민서의 얼굴이 떠오른다. 툭- 민서를 퇴학시키라는 혀 꼬인 민서 엄마 목소리가 맴돈다. 툭- 어디선가 엄마처럼 취해 있을 민서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 교사는 초임 때도 학부모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때는 별거 아닌 일에 많은 민원전화를 받았다. 그런 학부모들의 전화가 무서웠다. 모든 것을 김 교사 탓하던 학부모가 미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김 교사가 미웠다.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 교사는 이제 경찰서에서 걸려오는 학생들의 전화를 더 무서워한다. 모든 것을 학생 탓하는 그녀들의 부모가 미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김 교사 자신이 미웠다. 김 교사는 초임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미워한다.


저 높은 하늘, 김 교사의 머리 위에서 철새들이 원을 그리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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