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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리 Jul 16. 2022

절망(B)

너를 닮은 고양이


까만 하늘을 어깨 위에 걸친 채 학교에서 나온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한다. 차고 무거운 공기는 처진 어깨에 무게를 더해 나를 누른다.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학교에 오지 않은 민서가, 입을 꾹 닫고 수업을 거부하던 채원이가 내 어깨에 있다. 힘겹게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휙, 휘청인다. 직직직. 힘없이 늘어진 발걸음이 운동장에 삐뚤삐뚤 선을 그으며 나를 따라온다. 운동장에 수많은 직선을 그린 뒤를 돌아본다. 캄캄한 하늘에 학교는 무치고 달 하나만이 그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바닥에 끌린 양 발바닥이 얼얼하다.


버스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고 있을 때 멀리에서 여덟 량짜리 전철이 다가온다. 찰나의 순간 그 안으로 눈부신 조명과 함께 지친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그 순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무표정한 눈빛과 처진 어깨, 지친 표정이 스쳤다.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 내게는 웃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자신이 아직 없다. 전철은 빠르게 내 밑을 지나가고 육교가 흔들린다. 세상이 흔들리며 검은 하늘과 밝은 조명이 섞인다.


지상에 발을 디디고 주택가로 들어서면 가로등만 숨 쉬고 있는 외로운 길에 작은 입김이 보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움츠리고 있다가 과감하게 차 아래에서 나왔다. 고양이와 민서가 오버랩되어 보인다. 모두 잠든 춥고 어두운 세상으로 나와, 작은 입김을 뿜으며 온기를 찾으러 다니는 민서가,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 다니는 민서가 보인다. “너 춥지 않니? 그렇게 돌아다니다 차에 치일지 몰라. 혼자인 거야?”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발견된 소시지를 고양이에게 건넸다. 잔뜩 경계한 고양이는 내가 멀어져서 다가오지 못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이를 물고 사라진다. 마치 내게서 몇 가지 도움을 받고 사라진 민서처럼.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고양이 위에 겹쳐진 민서의 모습이 더 진해져 고양이를 덮어버린다. ‘민서… 지금 몇 시지?’ 주머니가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손을 꺼내 손목시계를 본다. 주머니 밖으로 나오자마자 차갑게 식어버린 손목시계가 10시를 가리킨다. 그녀를 연상케 하는 것들은 그렇게 모두 외롭고 차갑다.


민서야, 잘 자. 따뜻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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