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아이들
김 교사 반은 서로를 비난하기로 명성 높은 반이었다. 아이들부터 학부모까지 서로를 헐뜯는 말을 김 교사에게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김민지가 오늘 수업시간에 졸았어요." "선생님, 우리 애가 학교 가기 싫다는데 홍서연이라는 애 대체 뭐하는 아이인가요? 걔가 주동자인 것 같아요." 사실 김 교사 반 학생들은 어느 누구도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단지 학생으로서 지도가 필요할 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짓누르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한다. 학부모는 자기 아이의 방해 요소가 되는 아이를 김 교사를 통해 벌주려고 한다. 김 교사는 3월부터 '비난 금지'를 급훈으로 삼을 만큼 강조하고 반복한다.
체육대회를 앞둔 시점 어느 날 김 교사는 현지 어머니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체육대회 연습이 있다고 들었어요. 현지가 몸이 많이 약하지만 밝히고 싶지 않아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지 못했어요. 현지가 요즘 컨디션 문제로 체육대회 연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서연이 따돌리고 있다는데요. 홍서연이란 아이가 현지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교사는 홍서연이 현지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김 교사는 바로 현지와 상담을 진행했다.
-홍서연이 정말 너를 괴롭히고 있니?
-아니요. 생각해보니 제가 예민해져서 오해한 것 같아요.
-현지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다. 학급에 너의 몸상태를 이야기해야 아이들이 납득하고 이해해줄 것 같은데 선생님이 대신해서 이야기해도 되겠니?
-네
현지와 상담 후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현지가 초등학교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혼자서 잘 견뎌 보려고 했지만 요즘 체육대회 준비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야. 아마 너희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몰랐을 거다. 선생님도 몇 번이나 현지를 설득해서 너희에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현지가 끝까지 해보겠다고 해서 이제야 이야기한다. 현지가 해보는 데까지 해보겠지만 너희가 많이 살펴보고 배려해주길 바란다."
며칠 뒤 사건이 발생했다. 3교시 체육시간이 끝난 후 4교시 수업이 한창일 때 김 교사는 부반장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현지가 갑자기 토를 해요. 도와주세요." 현지는 4교시 수업 중 갑자기 교실 바닥에 구토를 했다고 한다. 급히 어머니께 연락을 드려 병원으로 현지를 보냈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6교시까지 일과를 마친 후 김 교사는 4교시 담당교사에게 인터폰을 받는다. "선생님 현지가 갑자기 토 했을 때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 아이가 뒤돌아보지 말라고 크게 소리 지르고 주변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로 토사물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 아이는 현지를 부축해서 보건실에 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지도하기도 전에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어요." 김 교사는 놀랐다. 시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매일 교실을 돼지우리로 만들어놓는 아이들이었다. 서로를 비난하느라 하루를 소비하는 아이들이었다.
다음날 등교한 현지가 김 교사이게 이야기했다. "반 애들 모두 괜찮냐고 연락해줬어요. 창피할 거 없다고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해줬어요. 요즘에는 교실에 있는 게 괴롭지 않아요."
김 교사는 학급 아이들의 대처에 놀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김 교사는 교실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김 교사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이들은 김교사의 억압으로 김교사의 규칙과 틀에 맞춰지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고 조급해했던 것이 아닐까. 성숙한 아이들이고 더 성숙해질 수 있는 아이들인데 김 교사는 학생들의 일체화에 그리고 규칙에 과하게 집착한 것이 아닐까. 김교사는 아이들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