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녹아내리는 순간

by Leeyoon

학교에 학원까지 하루를 마치고 온 딸과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나를 닮아

우울이 깊고, 불안도 높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 앞에 나도 아이도 긴장상태였다.


하지만 삶에는 참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다.

이런 걸 인생의 묘미라고 할까?

내가 늘 마음속으로 외치는 말 중에 하나는

'세상에는 막상 가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 참 많다'이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아이도 그런 느낌을 받았나 보다.

새로운 교실과 친구들, 그리고 한 학년을 맡아주실 각 선생님들의 얘기까지

아이는 할 말이 참 많아 보였다.


반에는 도움 반 친구가 3명이 있는데

누구도 그 친구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함께 게임도 하고 자기소개도 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

다만 조금 느리고 서툰 것을 기다리고 바라봐주는 반 친구들이 모두 너무 멋져 보였다는 것

무엇보다 각 과목마다 선생님들께서 모두 같은 얘기를 해주셨다는 부분은 특히나 인상 깊었다.

"너무 긴장되고 힘들지?"

"얘들아 인생을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너무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대한민국 교사로서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한 선생님은 칠판에 그림을 그리더니

"나 그림 못 그리지? 하지만 난 영어를 잘해.

이거처럼 누구는 공부를 잘하고 누구는 다른 걸 잘할 수 있어."

라고 했다고 했다. 모든 과목의 선생님들이 수업마다 들어와서 이제 입학한 아이들의 불안을 달레 주고 격려하며 따뜻한 말로 안아주신 것이다.

사실 그동안 많은 분위기가 공부를 잘해야 성공하는 것처럼, 대학이 인생이 전부인 것처럼,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무던히 애썼고 그로 인해 우울과 불안도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고등학교 돼서 너무 걱정되고 무서웠는데, 나 괜찮을 것 같아.

학교가 너무 좋아"

말하면서 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불안이 녹아내린 모양이었다.


이런 학교, 이런 교사들을 기대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따뜻하게, 안쓰럽게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학교가 있다는 게 너무 벅차서 나도 함께 울었다.


역시 세상에는 막상 가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 참 많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따뜻한 말에는 불안을 녹이는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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