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뿌연 눈에도 사랑은 남아.

by 김고만

잠을 자는 건 이제 네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너는 소리도 잘 듣지 못한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던 너였는데, 이젠 내가 네 코앞까지 다가가도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퍽 사랑스럽다. 적어도 달콤한 꿈이 방해받진 않겠구나. 위안이 된다.


너는 뒤늦게 나를 발견한다. 벌떡 일어나 편치 않은 몸으로 절뚝이며 다가온다. 가만히 누워있으라고 해도, 너는 굳이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나의 냄새를 맡고, 내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세상의 냄새 위에 네 냄새를 덧입힌다.


몇 걸음되지 않는 걸음이, 어려울 게 없는 그 행동들이 너에게는 너무 벅찬지, 마른 코끝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아프면 가만히 누워있어도 되는데, 그런 거로 나는 이제 아무 말 하지 않는데….


너의 퍼석한 등을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너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의 눈은 안개처럼 뿌옇다.


예전에는 네 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너를 사랑스러워 견디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지금 너의 눈은 까맣고, 또 탁하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

십수 년 동안 너의 작은 몸이 보고 듣고 느껴온 것들이 차곡차곡 쌓였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뭉클해진다. 켜켜이 쌓인 네 기억 속에는 분명 내 모습도 있겠지.

나는 부디, 네 기억 속 내가 뒷모습으로 가득차 있지 않기를 바란다.


반복해서 등을 쓰다듬어 주면, 너는 기분이 좋은지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우스갯소리로 “네 털로 코트 만들고 싶다” 말할 정도로 윤기 나던 털은 이젠 퍼석퍼석하다. 지방이 빠져 얇아진 등가죽에는 까만 세월의 흔적들이 잔뜩 남아 있다.


이 모든 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따금 나는 베갯잇을 눈물로 적신다. 불교 채널에서 들었던 스님의 말도 떠올려 보고, 철학자가 되어 스스로에게 되뇌기도 한다.

죽음은 그리 슬픈 일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모든 것에 죽음이 따라온다는 상투적인 말로, 수시로 내 가슴에 예방주사를 놓는다.


그럼에도 너의 멎지 않는 기침과 힘겨운 숨을 볼 때마다 나는 수십번 무너진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는 정말 바보라고.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너를 데려온 내가 정말 바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