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그 무렵 초등학생이던 동생이 뭔가 이상했다. 용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혹시 불량 청소년들에게 돈을 빼앗기기라도 했나 싶어,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동생부터 찾았다. 놀러 나갔다는 엄마의 말에 첩보 임무를 받은 스파이처럼 몰래 동생의 뒤를 쫓았다.
좁은 시골 동네라 동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을 끝 공터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이상했다.
“야, 너 여기서 뭐 해?”
가만히 보니 동생은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있었다.
그 강아지는 얼마나 떠돌아다녔는지, 털은 빗지도 않은 양털처럼 엉켜 있었고, 흙이 잔뜩 묻어 거무죽죽했다. 코가 짧고, 눈이 왕방울만 한 시추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는지, 내가 다가가도 눈만 꿈뻑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누구네 개야?”
“떠돌이 개야.”
“그래서, 여기서 키우는 거야?”
“엄마, 아빠가 개는 못 키운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여기서 키워? 밥은?”
“간식 사주고, 물도 갖다 줬어. 근데 용돈으론 부족해서 이제는 먹일 게 없어.”
그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동생은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쪼개서 강아지 먹을 것을 사 주고 있었던 거다. 불량배에게 삥뜯긴 게 아니라서 안심이 되면서도, 간식만으로 강아지를 먹이는 게 오히려 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집에 데려가자.”
“안 돼. 혼나.”
“일단 데려가. 여기서 계속 키울 순 없잖아. 비라도 오면 어떡하려고, 상자도 다 젖을 텐데.”
부모님은 좁은 집에 강아지까지 들일 수 없다며 화를 내실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용돈을 털어가며 몰래 떠돌이 개를 돌보고 있는 동생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내치시지는 못하실 거란 기대도 있었다.
역시나, 엄마는 이야기를 듣더니 강아지를 집 안으로 들였다. 녀석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말 그대로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아유, 못생긴 것.”이라며 웃으셨다.
엉킨 털부터 정리해야겠다며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강아지를 눕히셨다. 녀석은 어찌나 순하던지, 옆으로 눕히면 그대로 누워 눈만 꿈뻑거릴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엉킨 털을 모두 깎아낼 수 있었고, 이웃집에서 빌려온 샴푸로 목욕까지 시킬 수 있었다.
씻기고 나니 갈색 얼룩 무늬가 고운 시추였다. 수컷이었고, 배변 교육을 하지 않았는데도 신문지 위에 소변을 봤다. 소변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꼭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 같다며 어머니께서 녀석의 이름을 ‘폭포’라고 지어주셨다.
퇴근한 아빠는 폭포를 보자마자 집에 둘 수 없다며, 있던 곳에 두고 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동생은 울었고, 나와 엄마는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아빠는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 우리는 일단 늦은 밤이니 내일 데려다 놓겠다고 하고, 그날 밤은 폭포를 집에서 재웠다.
그리고 폭포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 집에서 잤다. 아빠는 폭포를 볼 때마다 데려다 놓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씀이 뚝 끊겼다.
당시 아빠는 늘 늦은 밤까지 연장 근무를 하셨다. 우리가 모두 잠든 사이에 귀가하셨기에,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폭포는 달랐다. 잠을 자다가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일어나 문 앞에 나가, 꼬리를 흔들며 아빠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빠가 퇴근길에 카스테라 하나를 사 오셨다. 자식은 셋인데, 왜 빵은 하나일까 싶었는데, 아빠는 카스테라를 잘게 찢어 폭포에게 주셨다. 그 순간 우리는 알았다. 이제 더 이상 폭포를 데려다 놓으란 말씀은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개집을 들고 왔다. 나무 판자로 만든 지붕도 있고, 아치형 입구가 있는 고전적인 개집이었다. 웬 개집이냐고 물었더니, 교감 선생님께서 동생이 떠돌이 개를 데려가 키운다는 얘기를 듣고 손수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나무를 자르고, 페인트칠까지 직접 하셨다고.
폭포에게 개집을 보여주니, 녀석은 커다란 눈을 꿈뻑이다가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동생에게 물어보니, 원래 폭포를 키우던 아이가 동생을 놀리며 “내가 버린 개 주워다 키운다”고 말했고, 그 말에 상처를 받은 동생이 엉엉 울었단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교감 선생님께서 우연히 그 모습을 보시고는 도와주신 거였다.
(어릴 때는 마냥 고마운 줄만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교감 선생님은 참 따뜻한 어른이셨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사랑받는 개가 어쩌다 떠돌이가 되었을까. 그건 지금도 우리 가족에게 남은 가장 큰 미스터리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었을까. 실수로 꼬리를 밟아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발톱을 깎아도, 털을 밀어도 얌전히 있는 이 사랑둥이를….
아무튼 우리 가족은 그렇게 첫 번째 멍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