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버린 게 아니야

by 김고만

그 시절 우리는 정말 서툴렀다. 개와 함께 산다는 개념이 희미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동물 병원도 없어서, 미용을 맡기거나 예방 주사를 맞히려면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이웃 시로 가야 했다.

그래서 폭포에게 먹을 사료나, 샴푸도 지역 마트에 파는 걸로만 샀다. 당시의 우리는 사료가 어떤 성분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도 두지 못했고,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료가 있단 것도 잘 알지 못했다.

폭포의 주식은 마트에서 사 온 사료였고, 간식으로는 카스테라를 먹고, 가끔 특식으로 사람들이 먹는 고기 요리를 먹곤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잔병치레 하나 없었던 개였던 걸 보면 사람도 강아지도 건강은 타고 나는 모양이다.


산책도 따로 챙겨주지 않았다. 길바닥에서 오래 살았던 탓인지 폭포는 밖에서 노는 걸 참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현관문을 앞발로 긁었다. 그러면 우리가 문을 열어주는데 녀석은 하루 종일 동네를 마음껏 돌아다녔다. 아마 그것은 차도 사람도 없고, 산과 개울이 많은 시골마을이라서 가능했었던 것 같다. 마음껏 놀던 녀석은 점심쯤에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벅벅 긁었다. 그러면 집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어준다.


그러면 물을 마시고 사료를 마시고는 현관에서 그대로 잠을 자곤 했다. 녀석은 내키면 다시 밖에서 놀다가 해가 지면 또 현관문을 벅벅 긁곤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잠은 꼭 집에서 잤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폭포의 생활패턴에는 우리 모두 적응했다. 시간이 지나니 동네 사람들도 폭포를 잘 알게 되었다. 이따금 폭포가 누구네 밭에서 놀고 있더라. 녀석이 읍내 장까지 내려갔다더라. 하는 재미있는 제보들도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네스와 리드줄이 있어도 막상 쓸 일이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하네스와 목줄을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은 참 순하고, 어렸을때 부터도 할아버지 같은 구석이 있었는데, 목줄을 채우고 산책에 나서면 아주 천천히 걸어주었다. 마치 폭포가 나를 산책하는 듯한 기분도 여러 번 받았다. 목줄 없이 돌아다닌다면, 풀숲이고 개울가고 마구 내달릴텐데, 일부러 사람이 걷을 수 있는 곳만 걷는 녀석을 보면 가끔 얘가 사람은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랬다. 폭포는 정말 사람 같은 개였다. 표정이 특히나 사람 같았다. 꾹 짓눌린듯한 짧은 코와 커다란 눈, 그리고 새까만 입술, 기본적으로 폭포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모습이 꼭 인생을 살 만큼 산 어르신 같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우리 가족은 녀석을 기르면서, 아니, 녀석과 함께 살면서 불편한 게 거의 없었다. 차키를 흔들면 어디 있든지 집으로 와서 외출 준비를 했고, 집에 손님이 와도 으르렁대지 않았다. 안 먹는 음식이 없었고, 사람을 물지도 않았다. 여러모로 정말 손이 안 가는 개였다.


그러다 하루는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 도보로 3분 정도 되는 아주 가까운 위치로 이사를 갔었다. 그래서 이사를 날을 잡고 간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서 짐을 조금씩 옮기는 식으로 갔었다. (특이한 이사 방법이다.)

우리는 폭포에게도 새로 살 집을 보여주었다. 영특한 녀석이니 새로운 집을 잘 익혔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녀석은 정말 영특했었으니까.


그런데, 완벽하게 짐을 모두 옮겨온 첫날, 아무리 기다려도 폭포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하는 생각에 엄마와 옛집으로 가보니, 폭포는 다른 가족이 이사온 우리의 옛집 현관문 앞에서 집 문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골목은 캄캄했고, 창문으로 형광등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폭포는 앞발로 문을 긁다가 지쳤는지 가만히 앉아서 닫힌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얼마나 기다렸을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폭포를 불러보니, 폭포는 천천히 꼬리를 들어올려 흔들었다. 나는 폭포를 끌어안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갔다. 가면서 몇 번이나 말해주었는지 모른다. 폭포야, 우리는 이사했어. 새로운 집은 여기야. 라고....


그 이후로도 폭포는 두세 번 더 옛날 집으로 가 있었다. 한 번은 옛 동네 주민분께서 폭포 보고, ‘너희 집 이사갔잖아.’ 라고 하시고 계신 것도 목격했다. 여하튼 폭포는 영특한 개였기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새로운 집에 적응했다.


그렇지만, 내 뇌리에는 닫힌 문을 바라보고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던 폭포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시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미 한 번 버려졌던 녀석인데, 우리 가족에게 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게 아닌데,

불이 켜지고, 맛있는 음식냄새가 흘러나오는 불이 환환 집을 보면서 외로워하진 않았을지, 실망하진 않았을지, 슬퍼하진 않았을지, 그게 아직까지도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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