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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지은 Apr 16. 2023

어른의 인생 수식

20230306 다섯 번째 작문

‘어른의 인생 수식’

덧셈 뺄셈을 이제 막 배운 어린 나의 눈에 어른의 삶은 더하기였다. 어른의 손을 거치면 뭐든 생겨났으니까. 하지만 법적으로 성인이 돼 강제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안다. 어른의 삶은 빼기다.


첫 직장, 방송 작가 시절의 일이다. 그날의 뺄셈은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됐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어림잡아 백번 빼고 나서야 침대를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잠을 포기하며 준비한 경연 프로그램의 생방송 D-DAY였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 에너지 생산을 위해 삶은 달걀을 입에 욱여넣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바쁜 직장인은 맛을 뺄셈 했다.     


출근과 동시에 내 이름 석 자가 아닌 막내 작가로 불리게 된 나의 빼기 위에 3이 덧붙여졌다. 세제곱이 됐다는 소리다. 막내에게 엉덩이 붙일 시간, 편하게 밥 먹을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심부름에 출연진 관리까지 쑥쑥 줄어드는 체력에 에너지 음료를 들이켜며 내일의 나를 빌려 썼다. 그렇게 양손에 원고와 큐시트를 들고 현장을 수십 바퀴 돌고 돌았다. 여기서 아이러니 한 점, 살은 어른 뺄셈 수식의 예외 사항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억울한 하루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새에 흐르고 드디어 일과가 마무리됐다. 방송국으로 복귀와 동시에 나의 영혼은 집으로 향했다. 앞서간 정신을 따라잡기 위해 바삐 정리를 마치고 귀가를 서둘렀다. 그리고 손 씻는 것도 잊은 채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이윽고 마이너스로 가득했던 수식에 새로운 기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딸깍’ 캔이 열리고 ‘촤아아아~’ 탄산의 ASMR이 시작됐다. ‘꿀꺽!’ 맥주 한 모금에 ‘캬아~’ 이어지는 탄성. 그래 이 맛!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후 기적처럼 나타난 플러스, 감동이다.     


맥주의 감동을 맛본 후에 비스듬히 주방에 기댄 나는 그제야 눈이 뜨였다. 잠이 많은 내가 잠 대신 출근을 택할 정도로 오늘의 일은 기쁨이었다. 달걀로 대신한 아침을 걱정해 주는 선배들의 한 마디에 마음이 따뜻했고 생방송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을 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뿐이랴 하루를 알차게 보냈음을 그런 나에게 보상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맥주 한 캔으로 증명받았다. 그러고 보면 감동, 뭐 별것 없다. 그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사소한 기쁨을 찾을 때 그게 감동인 거지. 뺄셈의 삶을 사는 어른이 되어서도 하루의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나에게, 즐겁게 살아갈 맛을 배운 나에게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어른의 삶은 여전히 뺄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른은 뺄셈의 수식 위에 올리고 싶지 않은 건 필사적으로 숨긴다는 것을. 그렇기에 어른의 수식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너무 꽁꽁 숨겨 자신도 잘 찾지 못하곤 하지만 우리의 인생 수식 안에는 분명 감동이 있다.




짱 어른은 아직 안 된 것 같지만

어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감동을 주제로 저만의 에세이를 써 봤습니다.


여러분께 궁금한 지은입니다!

Q. 이 글이 전하고 싶은 말이 잘 읽혔을까요?

Q.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고 어떤 부분이 가장 별로였나요?

Q. 이렇게 쓰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 하는 글 잘 쓰는 팁이 있다면 언제든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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