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28살 그날의 빗소리

#작두 타는 무당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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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호텔에서 함께 잠을 잔 다음 날,
총괄사장은 필요한 짐만 챙겨 한옥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같은 집에서 일어나 밥을 먹고, 함께 일했다.
신이 내려준 시간 같았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어줄 때면,
세상을, 아니 지구를 다 가진 듯한 벅찬 행복이 밀려왔다.

오전엔 호텔 업무를 보고, 오후엔 순시 업무를 맡았다.
그렇게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사표를 내밀었다.



“사별한 남자와 재혼을 하려고요.”
대구 어딘가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결혼식은 하지 않은 채 혼인신고만 하겠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도 회장님 하고 한 번… 같이 살아보고 싶었어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녀가 떠나고 며칠 후, 서울 대기업의 회장이 나를 찾아왔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차를 마시며 회장은 물었다.

“서울그룹 회장이 아직도 파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얼마 주실 건데요?”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하시죠.”

그렇게 해서 1조 원에 전부를 매각했다.
경호원들과 부인들도 정식 직원으로 그대로 승계하기로 했다.
곧 1000억 원이 입금되었고, 잔금은 열흘 뒤에 받기로 했다.



연말은 오랜만에 서울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팀장 부부와 네 명의 경호원에게는 지금 사는 집을 공동 명의로 해주었고, 위로금도 전했다.
사장단과 간단히 저녁을 하고 송별회를 마쳤다.


경호팀 부인들에게는 한옥집에 있는 옷, 핸드백, 구두를 선물했다.
모두 명품이라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항에서는 다섯 부부가 배웅을 나왔다.



부인들을 안아주고, 경호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나는 매각대금 전액을 사회에 기부했다.


오후 세 시, 딸과 사위가 마중을 나왔다.
집에 들어가니 고령의 부모님은 거동이 불편하셨다.
손녀를 안고, 저녁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내가 처음 마련한 집이었다.
도배와 장판이 새로 되어 있었고,
냉장고엔 소주, 맥주, 양주가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가족과 매일 밥을 함께했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천천히 메워지는 듯했다.



한 달쯤 지나 새해가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많이 울었지만, 그 슬픔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15일 뒤 뒤, 어머니도 따라가셨다.


두 분 다 치매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86세, 어머니는 84세 호상이었다.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간 가는 거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미진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고,
가은이는 시집갔다가 이혼했다.



지금도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이혼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3월의 봄, 날이 풀리자 딸과 함께 근처 초등학교로 산책을 나갔다.


“딸에게 여기 같이 걸었던 거 기억나?”
“그럼, 다 생각나지.”
“그때가 행복했는데…”
“지금은 행복하지 않니?”
“글쎄요.”

“대학병원 생활은 어때?”
“응, 좋아.”
“이서방 병원은?”
“손님 많아. 엄마 걱정은 하지 마. 우리 둘 다 의사고, 엄마가 사준 병원 건물이면 충분히 먹고살아요.

더 달라는 말 안 할 테니까, 이제 엄마는 엄마 인생 행복하게 살아.”



딸을 꼭 안았다.
“우리 딸, 많이 컸구나.”



시간이 지나며 몸이 점점 쇠약해졌다.
풀잎이 마르듯, 기운이 빠져갔다.
결국 딸이 일하는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걷지 못했고, 머리는 늘 아팠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두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그때, 지나가던 한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젊은 각시, 어디가 아파서 왔어?
나는 늙어서 왔는데, 젊은 각시는 왜 입원했대?”

그녀는 이튿날 퇴원이라며 말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와. 무당집이야.”

그 말에 그냥 웃고 넘겼다.



그런데,
“중하고 한평생 그렇게 살 거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인의 눈빛이 이상하게 깊었다.

“중 부부가 너랑 같이 사는 거, 알지?”
“초야도 못 치르고 중도 총각 중이잖아.”



나는 말을 잃었다.
‘보연 스님 부부’를 말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노인을 데리고 들어가자,
그의 아들이 다가왔다.


“어머니가 무당이세요?”
“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퇴원하시면 어머니한테 한 번 가보세요.”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가은이 병원 의사였다.

“집이 어디예요?”
“경기도 시골, ○○동네예요.
그 동네 가면 다 알아요.”



일주일 뒤, 나는 딸에게 말했다.
“거기… 무당집 한번 가보자.”

사위까지 데리고 갈 용기는 없었다.



내 귀접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시골 마을은 고요했다.
마을 끝, 열 가구도 채 안 되는 곳에
‘굿’과 ‘점’을 보는 무당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마당에 들어서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내 딸, 올 줄 알았지.”


무당할머니는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저번엔 아픈 사람 같더니, 오늘은 멀쩡하네.”
“아직 아파요. 기운이 없어요.”

“나도 늙어서 병원 다니지만,
몇 달에 한 번씩 그렇게 아플 때가 있단다.

들어오자꾸나.”



무당이 딸에게 말했다.
“넌 여기 있어라.”

방 안으로 들어서자,
진짜 무당집이었다.


방울과 부적, 그리고 향 냄새.

그녀는 방울을 흔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점괘를 보는 듯, 눈빛이 깊어졌다.

그러다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중하고 사랑이 즐겁더냐?”

숨이 멎는 듯했다.

“사랑을 했으면 보내줘야지.
중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구나.”



그 순간, 방울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아버지 하고 아들이 밤마다 너를 탐하는구나…
이런 나쁜 놈들.”
무당의 목소리가 방울 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초야도 못 치른 부인도 밤마다 너를 탐하고 있구나.
너, 여자 하고도 사랑을 하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을 내리깔고 숨을 고르는데,
무당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말이 틀리더냐?”

“……아닙니다. 사실 그대로입니다.”



그 말을 들은 무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귀신들을 보내야지.
이대로 두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이게 바로 귀접의 무서움이야.”



그녀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굿하자.
우리 아들이 그러더라,
너 유명한 여자라고. 돈도 많다고.
그 많은 돈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래?
병원 이사장하고도 친하다고 하던데.”



그렇게 나는 무당집에서 딸과 함께 하룻밤을 묵었다.
굿은 다음 날 오후 한 시에 하기로 했다.
사위도 합류했고, 무당의 며느리 또한 의사였다.

굿날, 나는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었다.


딸이 현금 천만 원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무당의 아들이 장구를 두드리고,
무당은 방울을 흔들며 물을 뿌렸다.

굿이 시작되자,
내 몸은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무당의 목소리는 점점 신에게 가까워졌고,
마당에는 짙은 향과 울음, 북소리로 가득 찼다.

세 시간이 지났을 때,
무당이 갑자기 작두 위로 올라섰다.



신들린 사람처럼,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올라오너라!”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무의식처럼 작두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내 두 발이 작두 위로 올랐다.

철의 날이 발바닥을 스쳤지만,
통증은 없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다.

딸과 사위는 충격에 얼어붙었고,
무당은 계속 작두 위에서 춤을 췄다.


그 순간, 내 몸은 완전히 방전되었다.



그리고 나는 쓰러졌다.

눈을 뜨니 방 안이었다.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딸 부부와 무당의 아들 부부가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고프다… 밥 먹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흘러나왔다.

딸이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엄마, 괜찮아요? 안 아파요?”
“응… 기분 최고네.”
“할머니는 주무셔요.
굿하느라 너무 힘을 쓰셔서 몇 시간 주무셔야 한대요.”



딸이 말했다.
“엄마, 땀 많이 흘렸네. 샤워하고 나와요.”
“응.”

샤워를 마치자 몸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언제 아팠냐는 듯, 머리도 맑았다.



무당의 며느리가 서울에서 직접 만들어온 반찬과 국을 내왔다.

나는 마루에 앉아 밥 두 공기를 비웠다.



고기도 먹었다.
몇 달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그때 무당의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병원에서 뵈었을 때 회장님 알아봤습니다.”

“그래요? 그랬군요.”

“어머니 덕분에 이렇게 나으셨는데,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소명을 돕는 건 제 일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무당인 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는 집 안쪽을 가리켰다.
“이 집은 어머니가 시집오시면서부터 사신 곳이에요.
고쳐드리려 해도, 손대지 말라 하시더라고요.”



아들 부부는 차로 40분 거리에서 산다고 했다.


“그럼, 제가 당분간 여기서 지내도 괜찮을까요?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요.”

“저야 감사하죠.
아내와 번갈아 오니까 언제든 편히 계세요.”



그날부터 나는 무당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를 ‘신딸’이라 불렀다.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게 내 팔자라면,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증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믿는다.



지금의 모든 일들이,
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