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5조 있는 여자의 식모살이
무당할머니는 그날 밤, 오랜만에 푹 잠을 청했다.
나는 새벽닭이 울자 일어나 마당을 쓸고,
집안을 닦고, 인부들을 불러 마당 정리를 시작했다.
아들이 집수리를 허락한 일이었다.
열 명의 인부가 하루 종일 흙을 고르고, 돌을 옮기고, 꽃나무를 심었다.
150평쯤 되는 마당은 금세 새 옷을 입은 듯 반짝였다.
옆으로는 사방이 밭이다.
흙냄새가 스며들었다.
다음날은 도배와 장판, 싱크대와 화장실 공사가 이어졌다.
주차장도 새 자갈을 깔았다. 시골 주차장이야 얼마나 넉넉한가.
트럭 한 대가 자갈을 쏟아붓고, 네 대의 차가 거뜬히 들어설 공간이 났다.
대문과 집 벽에도 새 페인트를 칠하니,
닷새 만에 낡은 시골집이 리모델링된 전원주택으로 변했다.
무당할머니는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고, 나는 옆에서 명상을 했다.
아침에는 내가 밥을 차려 같이 먹었다.
기도가 끝나면 함께 마주 앉아 준비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밥하고 국 그리고 반찬 두가지정도이다.
무슨 기도인지는 몰랐지만, 마음이 잔잔해지는 시간이 있었다.
점점 이 시골의 느림이 내 생활의 리듬이 되어갔다.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햇살이 부드럽게 손등을 덮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안락함과 여유, 그것들은 결국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에 있었다.
점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마을 노인들만 가끔 지나갔다.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도, 걸음이 느린 분들이라 오질 않았다.
일요일엔 아들부부, 딸부부, 가은이를 초대했다.
전날 택시를 타고 전통시장에 다녀왔다.
시장 사람들의 웃음소리,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림, 그 모든 게 새삼스러웠다.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오랜만에 활기찬 기분이었다.
그날 점심상에는 숯불 위로 소고기와 민물장어가 올랐다.
딸은 상추를 다듬고, 나는 밥과 국을 준비했다.
김치는 전날 밤 직접 담갔다.
가은이가 도착했다.
가은이가 내게 와서 꼭 안겼다.
“언니, 많이 아프셨다면서요. 몰라서 미안해요.”
“괜찮아.”
가은은 웃으며 말했다. “이혼하고 나니 더 젊어졌죠?”
우린 함께 웃었다.
그날 밤, 가은은 여기서 자고 갔다.
다음날 아침 내가 차린 밥을 먹고나니, 운전기사가 데리러 왔다.
도시로 돌아가는 차가 멀어질 때까지 마당에 서 있었다.
작은 집이었지만, 나는 그곳에 텃밭을 일구었다.
고추, 배추, 깨. 이장 할아버지에게 배우며 심었다.
일요일이면 늘 같은 얼굴들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택시 타고 장에 다녀오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다.
이곳은, 예전 말로는 ‘유배지’, 지금 말로는 ‘힐링’이었다.
가은은 자주 찾아왔다.
회를 사 오고, 생고기를 들고 와서 함께 먹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나가던 비 내리는 날, 가은이 불쑥 말했다.
“언니, 병원 인수해주면 안 될까요?”
“무슨 일이야?”
“운영이 힘들어요. 적자에 대출도 많고… 저, 미국으로 이민 가려구요.”
남자가 미국에 살아요.
잠시 말이 없었다.
“얼마면 돼?”
“1,500억이요.”
그날 저녁, 딸을 불러 셋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딸은 말했다.
“엄마가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해볼게요.”
그렇게 다음날, 병원 법무팀이 내려왔다.
1,500억 송금, 인수서류 서명했다.
딸은 이사장이 되고, 사위는 곧 합류하기로 했다.
무당의 아들은 병원장으로 승진시켰다.
모든 게 정리되자, 가은은 한 달 후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병원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이젠 흙과 나무, 밭일이 내 일상이었다.
무당할머니의 밥을 챙기고, 잡초를 뽑고,
저녁엔 마을을 걷거나 뒷산에 올랐다.
시골의 공기 속에서 내 마음도 맑아졌다.
가을에는 의사 네 명이 내려와 고구마를 캤다.
도시 아이들이 흙 묻힌 손으로 웃을 때,
그 웃음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저녁엔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별이 쏟아지는 밤에 그들은 서울로 돌아갔다.
시골이 내 집이 되었다. 아예 샹활터전이 된것이다.
무당할머니는 그해 늦가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화장을 해서 강물에 흩날렸다.
그녀의 아들은 할머니의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 불태웠다.
할머니 용품은 단 한개도 찿아볼수가 없었다.
집은 다시 단순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대로 그 방에 남았다.
겨울이 오고, 할 일이 줄었다.
그때 마을 총각 봉남이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왔다.
“새끼 낳았어. 상희 너 키우라고 가져왔다.”
그는 자주 반찬을 가져다줬다.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이라며 말이다.
점점 그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즐거워졌다.
나는 무당의 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병원 근처에 아파트를 선물했다.
그는 말했다.
“회장님이 시골에 사실 거면, 집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야 , 어머니 유산이니까 마음만 받을게.”
그리고 어느 눈 내리던 날, 나는 봉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데이트하자?”
“응?”
“9시에 마당 앞으로 와.”
그날, 문밖에서 그가 외쳤다.
“상희야!”
나는 청바지에 코트, 목도리를 두르고 나갔다.
그는 검정 롱코트에 반듯한 양복차림이었다.
“야, 총각. 선보러 가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도시 여자랑 데이트라서.”
우린 손을 잡고 큰 도시로 나갔다.
점심은 따뜻한 사골국밥으로 먹었다.
포근한 국물 한 숟가락에 몸이 풀리니,
눈발이 내리는 도심조차 따뜻하게 느껴졌다.
식사 후엔 백화점에 들러 총각에게 겨울 파카와 장갑을 선물했다.
청바지와 양말, 속옷도 함께 골랐다.
그리고 그의 홀어머니께 드릴 옷과 속옷도 챙겼다.
“겨울엔 따뜻하게 입어야지.”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등산화 코너에 들렀다.
눈길엔 역시 등산화가 최고였다.
내 것과 봉남것을 한 켤레씩 샀다.
그는 말했다.
“난 괜찮아. 너가 그냥 이리 같이 놀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봉남 무식하게 들이대지만 말아라.”
“응, 알았어.”
한 살 어린 총각과 나는, 그날 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오후엔 호숫가로 나갔다.
하얀 눈발이 호수 위에 부드럽게 흩날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김이 피어올랐다.
우린 눈 오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먹었다.
“도시 사람처럼 한 번 먹어보자”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고기 양은 적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소고기와 술을 샀다.
“스테이크 양이 너무 적었다.”
그의 집은 내 집에서 100미터 남짓 떨어져 있었다.
우린 소주 한 병씩 나누며 소박한 밤을 보냈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지고, 대화는 따뜻한 쪽으로 흘렀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창문 밖엔 눈이 고요히 쌓여 있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총각이 사골국 한 그릇을 내밀었다.
“해장하자.”
뜨거운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봉남이 이따 걷기 같이 하자?”
“응, 샤워하고 30분 뒤에 갈게.”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치고 나니 몸이 개운했다.
스킨만 바르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눈발은 잦았고, 바람은 잠잠했다.
총각집에 가니 그의 어머니가 내 주머니에 핫팩을 넣어주었다.
“찬바람 드니 이거라도 넣어요.”
그 손길이 참 따뜻했다.
우린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논밭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저수지 위로는 청둥오리 몇 마리가 떠다녔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 속에서, 세상이 멈춘 듯했다.
이제는 도시로 돌아가 살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여기, 이 느림과 고요가 너무 좋았다.
“언제 떠나니?”
총각이 물었다.
“글쎄, 아직은 몰라. 아마 겨울은 여기서 보낼 것 같아.”
“왜? 나 가면 놀아줄 사람 없냐?”
그는 웃으며 장난을 쳤고,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린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작은 마을은 너무 조용해서, 우편배달부 외엔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가끔 택배차 한 대가 지나가는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봉남아, 나한테 정 주지 마라. 너에게 상처주거나 그럴 마음은 없어.
내가 떠날 때, 네가 슬프면 나도 힘들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이 어쩐지 더 따뜻했다.
그렇게 시골 생활이 여섯 달째에 접어들었다.
12월 31일, 눈이 깊게 쌓인 날이었다.
딸이 나를 보러 왔다.
도시로 나가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알기에, 하룻밤 묵고 간단다.
그날은 총각네와 함께 송년 저녁을 준비했다.
총각이 장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부엌을 맡았다.
무당의 아들 부부도 찾아왔다. 오랜만의 상봉이었다.
작은 집 세 칸을 치우느라 총각은 고생이 많았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담근주를 나누며 외쳤다.
“올 한 해 수고했어요!”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따뜻하게 퍼졌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모두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텅 빈 집을 천천히 정리했다.
눈이 가득 쌓인 마당, 상큼한 시골공기가 좋다.
강아지 두 마리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강아지들과 눈길을 걸으며 하루를 열었다.
욕심 없는 삶 ,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 누구에게도 다 설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