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28살 그날의 빗소리

#초야(草野)에 묻혀

by 전태현 작가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0일 오전 08_09_09.png




강아지가 얼마나 예쁜지,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우유도 주고, 간식도 챙기고, 먹을 것 걱정은 하지 않게 했다.



그런데 요 며칠, 총각이 보이질 않는다.


궁금한 마음에 총각 집을 찾아갔더니, 홀어머니만 계셨다.
“봉남이 어디 갔어요?”
내가 묻자 어머니가 말했다.
“베트남으로 선보러 갔어.”
“정말요? 나한텐 말도 안 하고… 나쁘네.”



어머니는 휴대폰을 내밀며 사진을 보여주셨다.
스물아홉 살이라는데, 참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이번에 선보고 마음에 들면 한 달 뒤 결혼한대.”
“그럼 결혼식 갈 때 저도 같이 갈까요? 비용은 제가 낼게요.”
“그래? 그럼 그러자.”



며칠 뒤, 총각이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왔다.
한 달 뒤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랑 나도 같이 갈게. 돈 걱정은 말고.”

그렇게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딸이 인천공항까지 바래다 주며 내 카드를 받아
베트남 돈으로 환전해 오백만 원을 준비해 주었다.
“신부집에 선물사가라고 봉남에게 주었다.”



5박 6일, 짧지만 힐링 같은 여행이었다.
호치민의 호텔에서 머물며, 신부가 사는 마을까지
차로 두 시간 남짓 달렸다.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랬다.


‘이래서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는구나.’



갈 때는 셋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넷이었다.

사위와 딸이 봉고차로 우리를 데려다줬다.
딸이 총각에게 말했다.
“엄마 친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러곤 축의금 봉투를 슬쩍 그의 주머니에 넣었다.



베트남 신부는 영어도 잘하고,
현지에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나라가 가난해 어쩔 수 없이 시집을 온 것이다.



겨울 내내 넷이 함께였다.
총각 부부는 데이트도 가고, 스스로 알아서 잘 지냈다.
3월이 되어 신부는 제법 한국어도 능숙해졌다.



나를 “언니! 언니!” 하고 불렀다.


하지만 시골 생활은 쉽지 않았다.
“여긴 너무 조용해요. 신부가 살던 곳보다 더 작다.”
마트도, 카페도,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다.
고작 아홉 가구가 사는 곳이었다.
신부 입장에선 절집 같은 곳, 도 닦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총각 어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상희야.”
“네, 어머니.”
“아들 젊은 각시하고 이런 시골에서는 오래 못 살아.
혹시 병원 경비라도 좀 알아봐줄 수 있겠니?”


“어머니. 제가 알아볼게요. 걱정 마세요.”
“고마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날 저녁, 총각 부부가 생고기와 술을 들고 찾아왔다.
“아내 때문에라도, 일자리가 있으면 좋겠어.
여기선 너무 답답해.”
“그래. 걱정 말아. 내가 병원 주인이잖아.”



“고마워요, 언니.” 신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다음날 오전에 딸이 내려왔다.
“엄마, 아저씨는 병원 경비 정직직원으로,
아내는 급식실 정직으로 넣으면 어때요?”



“좋지. 임신하면 휴직하고 다시 일하면 되겠네.”

총각네 가족을 불러 소식을 전하니
어머니는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딸이 말했다.
“4월 1일부터 출근하면 돼요. 집도 알아봐야죠.”

그날 저녁, 우리 넷은 다시 파티를 했다.
무엇보다 베트남 신부가 세상 가장 행복해 보였다.



며칠 뒤, 병원을 함께 둘러봤다.
총각은 말끔히 차려입고, 신부와 어머니와 함께 왔다.
딸은 신부에게 다정히 말했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병원장도 나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봉남 형님, 축하드려요.”
“고맙다.”



딸이 근처 빌라를 보여줬다.
“20평이에요. 병원까지 걸어서 10분이면 돼요.”
그날 총각은 현금으로 그 집을 샀다.
냉장고, TV, 침대는 내가,
기타 살림살이는 딸과 병원장이 선물했다.



일주일 뒤, 신혼부부는 떠났다.
다시 강아지 두 마리와 나만 남았다.
총각 어머니가 가끔 반찬을 가져다주셨다.



봄비가 내린다.


처마 밑에서 강아지들과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텃밭엔 내 먹을 것만 조금 심었다.
딸에게도 오지 말라 했다.

자주 오는것도 이제는 성가시다.



마을 걷기, 저수지 낚시, 소주 한 잔이 내 일상이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엔 평생 시골에 묻혀 살 줄 알았는데,
이제는 답답하고 지루하다.



저수지에서 낚싯대를 던지며 생각했다.



‘나가면 뭘 하지?’
한심한 생각일까.

붕어 다섯 마리를 잡았다.
무 넣고 끓여 소주 한 잔 할 생각이다.



차가 없어 불편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강아지 둘을 보면 마음이 풀렸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했다.
비 떨어지는 시골 풍경이 좋았다.
대나무 잎에 맺힌 빗방울 소리, 그게 내 힐링이었다.



장마철이 되었다.
강아지는 훌쩍 커 있었다.
일요일마다 총각 부부가 놀러 와 하룻밤 자고 갔다.
고기 구워 먹고, 소주도 나눴다.



그들은 도시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했다.

돌아갈 때 참기름 세 병을 건넸다.
“딸에게 주라고.”
이장님이 직접 짜준 것이었다.



여름 내내 시골에서 지냈다. 어디 나가지도 않았다.


낚시도 즐거웠다.
붕어는 생각보다 많이 잡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 한 달쯤 캠핑을 다니고 싶었다.
중고차 거래소에서 4륜구동 차를 샀다.


병원에 도착하니 새신랑이 먼저 나와 반겨준다.
그는 예의 바르게 내 차 앞으로 다가와 주차를 도와주었다.
그 곁에는 베트남 아내가 서 있었다.
나를 보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얼굴 좋아 보이네.”
“언니도 건강해 보여요.”



짧은 인사였지만, 그 안에는 지난 시간의 정과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잠시 뒤, 딸이 내려와 캠핑용품을 차에 실어주었다.



“엄마, 이건 텐트랑 의자예요. 나머진 내가 중고로 알아서 사뒀어요.”
“그래, 나는 잘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해줘.”



딸의 손길은 늘 든든했다.

점심은 병원 구내식당에서 사위와 함께 먹었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갈을 떠먹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제 정말, 내 인생의 또 다른 길이 시작되는구나.’



식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자,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햇살은 부드럽게 내 어깨를 감싸고,

바람은 마치 등 뒤를 밀어주는 듯했다.

시동을 걸었다.


캠핑용품이 실린 차 안에는 묘한 설렘이 가득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앞으로 가면 된다.



어쩌면 이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서막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또 한 장의 지도를 펼치며,
어디론가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천천히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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