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에서 안악해변까지의 여정
서해의 자연속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담아내다
만리포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두번째 여정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근처에서 조식을 했다. 도보여행할 때는 길가에 있는 허름한 백반집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맛은 일품이었고 푸짐하기도 했는데 만리포는 많이 알려진 관광지라 그런지 맛도 없고 푸짐하지도 않고 가격은 똑같았다. 사실 개인 취향인 육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컸나보다. 그래도 먹기는 꾸역꾸역 다먹고 길을 떠났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시점을 바라보기 위해 다음 행선지 갈매못성지로 향했다. 지금은 냉담 중이지만 원래 천주교 신자였기에, 한번은 들려봄직한 곳이라 생각했다. 가는 길에는 방조제들이 많이 있었는데, 확실히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느낄수 있었다. 한국 취미 1순위가 등산에서 낚시로 바뀌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 했다. 낚시는 잔잔한 물가에서 무언가를 건져올릴 기대감과 조용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할까? 일상을 벗어나는 무위자연 속에서의 힐링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되었다.
가는 길에 몇번이나 스쿠터를 세우고 자연의 정취를 느꼈지만, 충남 홍성을 지날 무렵 나의 발길을 가장 오랫동안 끌었던 곳이 바로 홍성방조제 준공탑공원 인근이다. 여기에는 큰 풍차가 있는데, 바다와 들판과 풍차가 어우러진 풍경이 상당히 이국적이기도 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스쿠터는 물론이고 자가용으로도 드라이브 하기 좋은 곳이라 느꼈다. 이 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어쩌면 여행의 기억 만으로 남을 추억 속에 내음이라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가을의 정취를 깊게 들이 마셨다.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터라 점심때가 지나서 갈매못성지에 도착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순교를 한 장소라고 하는데 순교했다는 그 장소에 이상하게 물이 를러나오고 있었다. 자연적인 현상인지 인위적인 작업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바닷가 앞에 있는 성지라 그런지 성당의 모습이 아담하고 이쁘게 느껴졌다. 갈매못성지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행선지는 죽도였다. 보물섬이라 불리우는 그곳이 매우 기대가 되었지만, 관광객이 넘쳐나고 내가 생각했던 힐링의 포인트가 아닌 것 같아 잠깐 둘러만 보고 바로 다음 행선지 춘장대해변으로 조나단을 제촉했다. 가는 길에는 가을의 청취가 물씬 풍겨나는 갈대밭도 멋드러지게 흔들거렸다. 마치 내가 왔다고 손을 흔들며 미친듯이 환호하는 듯하여 롹가수 처럼 그 위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육중한 내 몸무게를 생각하며 이내 생각을 접었다.
춘장대해변에 도착해서 회덮밥을 먹고, 근처에 있는 올레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피곤했는지 쇼파에 앉은채로 살짝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카페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여기 카페 이미지가 있어서 여기서 자면 안된다고 더럽게 맛도 없는 커피 값 5천원을 테이블에 두고 갔다. 동네 다방 같은 분위기인데 무슨 이미지가 있다는건지도 모르겠고 이미 상거래가 완료된 상황에서 자기 맘에 안든다고 돈줄테니 나가라는건 어느 장사치의 논리인지 갑자기 이런 수모를 당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었다. 다시는 이런 곳에 오고 싶지도 않아서 돈을 내팽겨치고 사장을 한번 노려보고 밖으로 나왔다.
엉망이었던 기분을 풀어준건 또 다른 가을 풍경이었다. 충남 서천에서 전북 김제로 넘어가는 길에 소나무 가로수길과 그옆에 코스모스가 너무 이쁘게 피어나 있었다. 서해의 가을을 모두 나에게 담아주는 느낌이 들어 문득 첫째날 갈까 말까 고민하던 내가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다음 행선지는 모항갯벌해수욕장 이었다. 그곳에서는 캠핑을 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고, 가족들과 함께 가을 바다를 즐기로 온 사람들로 붐볐다.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나는 안악해변이라는 곳에서 조용히 캠핑하기로 하고 해가 저물기전에 도달하기 위해 핸들을 빠르게 돌렸다.
내 기대와는 다르게 안악해변에는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나서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은 없을까 돌아다녀봤지만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더 다니기엔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해수욕장 광장 같은 공간에 텐트를 쳤다. 배가 점점 고파져서 빠르게 취사 준비를 했는데, 내가 가져온 버너가 일반 가스랑 맞지가 않았다. 길쭉한 버너가 아닌 낲작한 버너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합체해보지 못하고 그냥 왔던 것이다. 해변 앞에는 식당하나 있는 것이 다였는데, 사정을 말하니 햇반을 데워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식당에서 만든 반찬 몇개를 담아 주었다. 역시 전라도 인심인가 싶어 감사해 맥주 하나를 구입했다.
시원한 밤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배고플 때 먹는 늦은 저녁, 잔잔한 음악과 맥주까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니 더이상 바랄게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내가 나로써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건 이런 만족감이 충족되었을 때 느껴지는 게 아닐까.
텐트에서의 취침은 나름 괜찮았다. 파도 부서지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에 간간히 깨기는 했지만, 텐트 지퍼를 열었을때 바닷가와 모래사장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필이면 텐트 앞에 왠 장의차가 유골을 뿌리러 왔는지 차를 세우는 바람에 텐트에 잠시 숨어 있기는 했지만, 상쾌하게 다음을 준비 할 수 있었다.
2일차는 320km 정도를 달렸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를 가로지르고 서해의 자연속에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 좋았던 날이었다.
write in 2017 autu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