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보다 인간성이 당연한 시대를 꿈꾸며

영화 '전,란'(스포주의)

by 다솜

신분제 속에서 사람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임금은 당연히 백성을 다리스고,

양반은 당연히 아래 것들을 부리며,

노비는 당연히 부려짐 당하는 존재였다.


그러니 장차 장군님이 되실 도련님 대신 노비가 매를 맞는 것은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일보다 당연한 이치였다.

이에 대감집 아들 대신 매 맞는 노비가 된 남자아이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매를 맞아야 돼요?"


전란의 시초가 된 의문이었다.


임금이든, 양반이든, 노비든 사람으로 태어나 먹고, 자고, 싸는 대동한 존재인데

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 우위를 가르고 인간의 존엄을 헤친단 말인가.



당연함과 의문이 공존하던 때에, 그 속에서 남몰래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

도련님 종려는 노비 천영에게 먹을 것을 주며 같이 아파해주기도 하지만

천영의 이름 뜻을 따를 천에 그림자 영이라 하며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르라 말한 것을 보면

아직도 노비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도련님과 칼을 맞대며 가까워진 거리만큼 천영의 마음에 자라난 희망은 기어코 노비라는 이름표를 떼어낼 기회를 만들었다.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던 도련님 대신 시험을 보고 장원급제하면 노비문서를 받기로 대감님과 약조한 것이다.

시험날 종려가 천영의 도노(도망친 노비) 문신을 천으로 가려주고, 천영이 종려의 같은 쪽 손에 상처를 내 같은 천으로 묶었듯이

신분이라는 제도를 가리고 낮은 자들을 본다면
높은 자들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게 되고,
서로 같은 손에 천이 묶인 존재가 되어
비로소 대동한 인간으로 맞잡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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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은 아직 신분이라는 꼬리표를 놓지 못했고 종려의 신념도 흔들리다 결국엔 변해버렸다.

천영이 도망가도록 어깨를 내어주던 그가 이제는 다른 노비의 등을 밟고 말을 타는 사람이 되었다.

둘 사이의 오해 때문에 변한 것도 있지만 종려처럼 권력자의 압박과 힘겨운 상황에 처해진다면

나도 손에 묶었던 천을 풀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변해버린 종려와 다르게 같이 의병을 했던 사람들은 천영을 같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중 자령이라는 양반이 천영의 이름을 하늘 천에 따를 영이라고 지어준 것을 보면

종려의 시야를 넘어선 진정한 대동의 시야를 가지고 천영을 바라본 이가 아닐까.



대동을 바란 사람들의 믿음이 무색하게

높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백성을 지킬 의무가 있는 임금이 궁을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지체 높은 대감님이 천영과의 약조를 지키지 않는 것처럼,

나라를 위해 힘써야 할 대신들이 외세에 붙어먹은 것처럼.


반면 낮고 천한 사람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은 그 빈자리를 묵묵히 채워 나간다.

의병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부모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고, 부모가 양반이면 자식도 양반으로 태어나는 세상.

그 타고난 꼬리표가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얼마나 무용한 잣대였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진짜 높고 귀한 사람은 누굴까?

사람의 귀천을 나누는 건 신분이 아니라 인간성.
당연하게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전쟁이 끝나고 아직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천영과 남은 의병들은 살아남았다.

모두 대동한 인간으로 손을 맞잡을 때까지 아마 그들은 계속해서 붉은 띠를 전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쩌면 별다를 것 없을 수도 있다.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제도가 없을 뿐 마음이나 사회적 잣대로 귀천을 나누는 모습은 아직도 만연하다.

영화처럼 전쟁 같은 위기가 오면 전란 속에서 그 실체가 투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사람의 귀천을 나누기보다 인간성을 당연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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