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성공적인 직업생활'을 다시 생각하며

Jan 13. 2025

by 협주

성공적인 직업생활에 대해서 써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었다.

뭐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너무 바로 다음작품으로 들어가서 각잡고 노트북을 필 여유가 없었다.

뭐 사실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니고, 노트북 앞에서 발생하는 여유는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스포츠기사를 읽거나 하는 일상의 용도로만 활용했었다.

아 그래, 노트북을 노트북 가방에 들고서 어디를 가지 않았다. 사물은 공간의 영향을 받아, 집에 있으면 철저히 휴식의 용도가 되고 집밖으로 나오면 나름의 사무와 창작의 용도가 되는 것 같기도 같다.


어찌됐든, 오오랜만에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브런치 글을 한동안 안 올린 건 반성할 것도 아니고 변명할 것도 아니지만 오오랫동안 글쓰는것에 크게 의욕을 내지 못했었고, 작년 상반기는 주욱 쉬었었고, 작년 하반기는 주욱 공연을 했다. 그래서 쓰고자 했던 이야기에 대해서도 이제야 쓰는 나에 대해 약간은 반성을 하며..


성공적인 직업생활은 한현주 작가님이 썼고 이오진 연출님이 연출했다. 이오진연출님과는 안 시간도 꽤 됐고 유대관계가 쌓여 그냥 평어로 서로를 부르기에 오진이라고 하겠다. 오진이 처음 이 대본을 제안했을 때 들었던 기분은 내가 과연 이런 이야기에 참여해도 되는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였다. 데뷔 후 경력의 대부분이 동시대의 일면을 다루는 작품들이었지만, 이만큼 집요하게 뚜렷한 목소리로, 처절하게 아프게 얘기하는 공연을 한 적은 없었다. 노동에 대해서, 산업재해에 대해서, 특성화고등학교와 현장실습생에 대해서, 방치하는 주변인들에 대해 연극은 아픈 말들을 쏟아낸다. 연극의 예술성 뒤에 안전하게 자리잡기보단, 훨씬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대사들이었기에, 어쩌면 그 말들이 우리 연극의 모든 것이었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 아니니까요. 현장실습생이잖아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실습시키면 안 되고 돈 아끼려고 대체 근로자로 쓰면 안 되는, 어디까지나 교육 목적의 현장실습생. 그렇게 배웠는데요 \

희재, 다쳤는데 그냥 공상처리하고 그런 건 아니죠? \

실습생 산재처리가 법적인 의무는 아닐걸요? \

서약서. 위 본인은 현장실습파견에 동의하며 교칙과 파견 근무하게 되는 회사의 사규를 엄수할 것은 물론, 현장실습 근무 장소 무단 이탈 및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현장실습에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만일 실습 중 본인의 과실로 인한 안전사고에 대하여도 학교 측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음을 보호자 연서로 서약합니다 \

저 학교 그만두기 전에 교장쌤이 뭘 지시했는지 아세요? 우리 학교 중소벤처기업부 특성화고 인력양성사업에 선정이 돼야 한다고, 취업자부터 온갖 수치를 눈에 안 띄게 조금씩 조정하라는 거예요. 애들 들어가지 않은 회사 이름까지 빌려 왔더라고요. 그런 일 시키기에 제가 딱이었겠죠. 일 잘 처리하면 계약기간 연장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기더라고요.>


성공적인 직업생활은 작가님의 전작 괴물B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이란 산업재해로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몸이 부분부분 합쳐져 탄생한 존재 'B'의 실재를 인정하는 배경을 말한다. 그러기에 괴물 B와 성공적인 직업생활은 완전히 다른 등장인물을 가지고도(심지어 성공적인 직업생활에는 B가 실제적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 존재를 인정할지 말것인지의 선상에서 나오는 어떤 언급들만이 존재할뿐) 일부의 대사를 공유한다. 그러나 관객이 괴물B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건 없다. B는 노동과 관련된 어떠한 취약함에라도 노출돼 있는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 B구나, 그런 느낌 있잖아요 왜. 완전 신기했어요. 일하다가 다친 사람들의 몸이 붙어서 하나의 몸이 된 거래요. ... 너무 힘들대요. 자기 몸의 주인들이 느닷없이 나타난대요. B만 그 사람들을 보는 거죠.>


한현주 작가님께 이 연극을 왜 썼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작가님은 '부채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부채감이 얼마나 크길래 이렇게 희곡으로 만들수밖에 없었을까. 그것도 사실상의 연작으로. 창조주의 마음을 함부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부채감'이라는 단어에는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내 현시점의 사회적 성숙도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나는 유년기를 한참전에 지나온 성인인데, 나보다 나은 과정을 거쳐할 이들이 아직도(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영악한 방식으로) 겪지 말아야할 일들을 너무 쉽게 겪고 있다. 죽음이 너무 쉽다. 2014년을 지나왔음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다.


때론 작품들간에도 어떤 연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작품과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그리고 영화 '다음 소희'는 모두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실재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각각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다. 어떤 인물에 집중했느냐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이야기들 모두 김동준군, 김동균군, 홍수연양, 이민호군, 홍정운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한다. 창작자의 부채감을 가지고 이야기가 제작된다. 그러기에 그 이야기들은 콘텐츠로만 머물 수 없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뚫고 사회에 미세한 파동이라도 내려 한다. 내야 한다. 크게 인지하지 않으면 쉽사리 모르고 넘어갈 이야기들에 대해 알려주고, 그 다음을 방지하기 위한 힘을 향해 손을 뻗는다.


희재를 연기하며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운 적은 거의 없었다. 희재는 사건의 당사자이고 사건들의 충격과 무기력으로 쓰러지는 인물이기에 슬픔이 희재의 주된 정서는 아니었다. 그리고 희재를 연기하는 나 역시도 극강의 F 성향은 아니기에. 하지만 희재의 죽음이 진구와 현민, 정은에게 닿는 방식은 희재 본인의 아픔과는 다른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에게도 달랐을 것이다. 연습실 분위기는 너무 좋았지만, 때때로 동료들이 쉽지 않은 공연을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특히 준호와 순미누나는 (연출인 오진 역시도) 공감지수가 큰 이들이라 씬 안에서도 씬 밖에서도 눈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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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그 자체보다도 마음과 태도가 전달되길 바랬다. 적절한 연극적 선택들 아래.

연극은 결국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작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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