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4. 2025
성공적인 직업생활과 더불어 시차에 관해서도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기록하고 싶어서. 시차를 하며 깃든 생각과 그 공연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김질을 하고 싶어서 이제라도 약간의 말들을 적어본다.
개인적으로 내가 작가님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굳이(긍정적인 맥락에서)'라는 키워드가 들어간다.
사월의 사원에서도 그렇고, 발톱수달에서도 그렇고 인물들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마음때문에 괴롭고 행복해보였다. 필연적인 선의로부터 발생한 어떤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우리 이야기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내가 담당했던 인물들부터 그랬다.
윤재는 왜 그랬을까. 세민이를 꼭 그렇게 데리고 와야 했을까. 꼭 그렇게 지켜주고 싶었을까.
지수는 또 왜 그랬을까. 아무런 근거도 없는 타인이 걱정돼 돈을 부치고 찾아가야 했을까.
선의는 결국 인물의 사적인 욕망과 섞여 복잡한 방식으로 뻗어나가지만, 그 최초의 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딜레마가 있었을가.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파고들다 보면 인간의 이중성, 전사, 역사, 유년의 기억 등 많은 것들이 이유가 되겠지만
때때로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수용적인 답은 그렇게 '되어진' 감각이 아닐까 싶다.
내가 큰 의지를 발휘하기 이전에 내가 그럴수밖에 없는 감각.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찾아가려 했던 반장님과, 그 이상으로 무연고장례식에 익숙해진 선아의 모습 역시도 그렇게 느껴졌다. 세민이도, 조문객도. 이유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유가 모든 행동의 등가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일들은 이유를 필요치 않기도 한다.
"답할 필요 없는 것들에 답을 해주려다 보면 비참해져. 그때 쌤이 한 것도 그런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조문객한테 왜 오시냐니. 그런데 내가 비참하게도 그 질문에 답을 계속 생각해봤잖아요. 뭐라도 해야겠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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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가 낭만적으로만 풀리진 않는다.
어떤 실패, 혹은 한계를 지닌 채 인물들은 살아간다.
나는 그래서 우리 이야기가 더욱 더 섬세하고 처연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좋았다.
두산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장례를 결국 이뤄내서 이 모든 서사가 ‘종결’된다는 감각을 빼고 싶었습니다. 무연고 장례 장면의 경우 몰래 치러져야 한다는 긴장감과 슬픔을 느끼면서 썼습니다."
또 이렇게도.
“쓰지도 않았는데 염려부터 받을 줄이야. 또 사회적 참사냐는 그 말 때문에라도 아무래도 또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했습니다. 실재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 염려에 단단한 답을 내어주고 싶었지만, 그저 이 ‘이야기’가 담고 있을 어떤 순간, 어떤 장면, 어떤 인물들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써야만 한다는, 쓰고 싶다는 충동으로 일단 〈시차〉의 세계를 만나본 후에야 그 걱정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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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따뜻한 한명 한명에게 모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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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은 그 일이 체감이 되기도 힘들정도로 비현실적이게 활자화되는 것 같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