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별 거 없더라

by 세진

1학기보다 2학기가 더 힘들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통학을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2학기에는 심한 번아웃이 왔었다.


논술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로 가는 과정에서 놀러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매번 출퇴근을 말 그대로 "낑겨서" 했다. 그런데 토요일만 일하러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생활이 문제였다.


월요일에서 목요일은 왕복 4시간이 넘어서 저녁만 먹고 씻고 바로 자기 일쑤였다. 오전에 일어나서 오전 수업을 들어야 했고, 집에 오면 바로 잠들었다. 특히 이번 2학기는 심한 감기에 많이 들었어서 감기약으로 잠드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까지는 전혀 쉬지 못하고 학교 과제를 해야 했고, 토요일은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요일에는 또 과제를 했다. 그리고는 또 오전에 일어났다. 전혀 쉴 틈이 없었다. 논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논술 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엄청난 번아웃이 왔었다. 일을 하면서 힘들지는 않았지만, 출퇴근을 하는 과정에서 힘이 들었다. 사실 토요일만 하게 해준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쉴 틈이 전혀 없다는 걸 실감하고는 했다.


그러던 중, 일이 생겼다. 1-2월에는 방학이니까 논술 학원에서 추가 근무를 할 생각이었다. 12월에 계약이 종료 되어도 재계약을 하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12월 초에 담당 선생님께 물어봤다. 알고보니 계약 종료 대상이랬다. 학생 수가 줄어서,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거였다. 그걸 얘기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였다.

담당 선생님이 바뀌었다는 건 알았고, 담당 선생님이 기존 선생님과 다르게 첨삭 교사들한테 친절하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미리 얘기해주시지 않았냐 했어도 대답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시험기간에 알바까지 알아봤었다. 기말고사 시험 기간에 아르바이트까지 살펴봤다. 겨울 방학이 시작 되고 12월에 계약이 종료 되면 바로 새로운 알바를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과정에서 주고 받는 거마저 지치기 시작했다.


내가 그만둬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학원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토요일만 근무하는 사람이다보니 계약 종료 대상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참고 일하고 있었는데. 담당 선생님한테 개인 카카오워크로 연락이 왔다.


선생님, 학생들에게 피드백 할 때 어려운 단어 좀 쓰지 마세요. 그러면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물어보게 돼요.


그 연락을 출근 전에 받았다. 내가? 내가 언제 어려운 단어를 적었다는거야? 나는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많이 해봤기에 어려운 단어를 매번 풀어서 적었다. 그러기에 나는 그런 식으로 적지 않는다고 답장을 드렸다. 그랬더니 원고지를 찍은 사진을 나한테 보내셨다.


내가 첨삭한 원고지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첨삭한 선생님들은 원고지에 싸인을 해야 된다. 싸인으로 첨삭 선생님을 구별하기 위해서. 그런데 새로운 담당 선생님이 누구 싸인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나한테 보낸거였다. 그러면서 제 거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선생님이라 주기가 같으셔서 선생님 원고지인건가 해서요."


그런 거면 왜 싸인을 하게 시키냐고, 싸인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대로 뭐라하면서 왜 그러냐고. 싸인을 확인할 생각은 안 했냐고. 담당 선생님께 그런 말이 하고 싶었으나 나는 그럴 위치가 아니니 하지 않았다. 알았다고만 했다.


새로운 담당선생님으로 바뀌고 나서는 첨삭 단체 카톡방이 변했다. 애초에 기존 담당선생님이 퇴사한 시점부터 학원 체계가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는데, 보조 교사 선생님들한테 뭐라 하시는 횟수가 늘었다. 이렇게 하면 계약 종료 대상으로 넣을거라는 걸 읽고 헛웃음이 나서 웃었다. 꼭 ~권을 채우라면서, 그러지 않으면 계약 종료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계약 종료 대상인데.


그런데 정작 원고지가 부족해서 ~권을 채우지 못했다. 학생 수가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 편하게 다니는 학원마저 이제는 가기 싫은 공간이 되었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학교를 다니면서, 일찍 종강한 교수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교수님으로 인해 2시간을 위해 왕복 4시간도 넘는 학교를 가야 했다. 고열이 나도 약을 먹고 갔다. 그렇게 기말고사를 겨우 마쳤을 때. 갈라져 버린 손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해 별 거 아니더라.


나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손을 자주 씻는다. 원래도 손을 자주 씻는 편인데, 학교에서는 자제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서 새로운 알바를 구하랴, 왕복 4시간도 넘는 시간에 내 몸 관리하랴, 없는 시간 쪼개서 아픈데도 과제하랴 등 여러모로 스트레스 받으면서 손을 더 자주 씻게 되었다. 사실 손을 자주 씻는 것보다 손을 씻고도 보습제를 바르지 않은 탓이 컸다. 그게 결국은 자해로 나타났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


기말고사를 마치고 도서관에서 쉬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추운 날씨, 이제는 정말 당분간 이 학교에 오지 않는구나 실감하면서.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던 때였다. 그러던 중 손등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 놀란 마음과 함께 다른 손으로 피를 닦아냈다. 피는 닦아내도 다시 나왔다. 그렇게 몇 번 닦다보니, 피가 멎었다.


상처로 흐르는 피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멎었다. 지하철역에서 손을 씻으니 피가 묻어 있는 손등은 말끔해졌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피가 흐르는 손등을 닦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자해 별 거 아니라고. 이렇게 나를 아끼지 못하는 것이, 자해지. 뭐가 자해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등에 있는 피를 닦아냈었다.

그렇게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고 집에 왔던 날. 나는 근육통과 함께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엄청난 고열로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은 으슬으슬 추웠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뤘던 날은 목요일. 금요일까지 내야 되는 과제가 2개나 있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목요일 저녁부터 과제를 하려고 했는데. 아팠던 탓에 목요일에 과제를 못하고 일찍 잠에 들었었다. 그래서 일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심한 근육통으로 일어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병원에 가서 근육 주사를 받았다.


주사를 받은 후 온 힘을 짜내 과제를 했다. 그렇게 금요일 오후에 과제를 제출했다. 주사 덕에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과제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사 효과는 떨어졌다. 또 다시 으슬으슬 아팠다. 금요일 저녁. 나는 종강했다는 해방감과 함께 다시 아픈 채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토요일 오전. 또 학원을 가기 위해 알어났다. 아직도 몸이 낫지 않아서 빈속에 약을 먹고 출근했다. 그때 저 연락을 받았었다. 첨삭 어렵게 하지 말라는 연락을. 내가 하지도 않은 걸로, 출근도 전에.




이제 논술 교사는 27일이 마지막 근무이다. 사실 아쉽다. 어떻게든 무리해서 금요일까지 다녔어야 됐던건가, 하는 아쉬움이 남다가도, 담당 선생님이 계속해서 보이는 행보와 바뀐 시스템을 보면 지금이라도 나가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기말고사 기간에 알바 사이트를 찾으면서, 과외를 찾으면서,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는 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시험 기간에는 왜 이리 알바 구하는 거까지도 조급했던 것인지. 모든 것에 조급하고, 해야 할 일에 조급하느라 정작 나를 자해한 건 아닌지.


그럼에도 나 자신을 자해하면서까지, 어떻게든 마쳐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성적은 나에게 중요하니까.

물론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한 건 알지만.

그래도 견뎌낸 나 자신에게 참 고맙다.



그래도 조급했던 마음을 버릴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경험들이 쌓이던 탓이었던 거 같다. 시험 기간에 아르바이트를 조급하게 구할 수록 아르바이트 자리는 제대로 구해지지 않았으니. 오히려 이렇게 12월에 계약이 종료 되는 것도 더 좋은 기회이자 신호일수도 있으니.



손등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다른 손으로 피를 닦아도 새로운 피가 흘러들어왔다. 멎지 않으면 어떡하지. 화장실에 가서 손이라도 닦을까. 피를 닦아내야 될까. 그렇게 생각하며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호호, 갈라진 내 손등에 있는 피를 호호 불었다. 그리고는 다시 닦아냈다. 조금은 멎었다. 조금은 멎고서 안도감이 들었다. 더는 아프지 않겠구나.

그러다 깨달았다. 아. 자해는 별 거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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