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SOLUTION
뱅앤올룹슨: 소리를 넘은 예술, 그 100년의 헤리티지
세계 소비자용 오디오 시장은 무선 기술의 발전과 스트리밍 콘텐츠 소비 확산에 힘입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하이엔드 시장은 단순한 음질 스펙 경쟁을 넘어 공간의 미학을 결정하는 인테리어 오브제로서 그 가치가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25년 덴마크에서 설립된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은 스칸디나비아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기술과 디자인의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며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의 독보적인 니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뱅앤올룹슨의 진정한 강점은 제품을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문화적 자산으로 만드는 소재 기술과 철학에 있다. 금속 본연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반영구적인 내구성을 확보하는 독자적인 ‘아노다이징’ 알루미늄 가공 기술은 브랜드의 상징이며, 과거의 명작을 현대 기술로 복원하는 ‘Recreated Classics’ 프로젝트는 단기 소비재로서의 가전을 넘어선 예술적 가치를 증명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뱅앤올룹슨의 제품들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되는 등 단순한 기기를 넘어선 디자인 역사의 일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 주기가 급격히 짧아지면서 뱅앤올룹슨은 전통적 럭셔리와 IT 기술 사이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불안정성과 공격적인 가격 인상 정책은 소비자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며, 애플과 소니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프리미엄 시장을 잠식하며 ‘올드 럭셔리’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하드웨어의 미학만으로는 초고가의 가치를 정당화하기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 브랜드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정의할 전환점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2025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뱅앤올룹슨은 이를 기점으로 ‘체험형 럭셔리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럭셔리 출판사 애슐린과 협업한 아트북 출간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적 깊이를 아카이빙하는 한편, 세계 주요 거점에 ‘House of Bang & Olufsen’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어 고객이 브랜드 생태계를 직접 경험하고 커스텀할 수 있는 갤러리형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가전 제조사를 넘어, 고객과의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지속 가능한 럭셔리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100주년 기념 광고 ‘Sound. Elevated.’ 속 숨은 포인트들
1. 시대적 요소의 재현 속에 자사의 제품을 넣어 문화적 아이콘임을 입증
광고는 1925년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를 상징하는 인테리어와 복식을 영화적으로 재현하여 그 속에 배치된 자사 제품이 단순한 가전을 넘어선 문화적 아이콘임을 보여준다 Beovision Capri, Beogram 4000, Beosound 9000등 디자인 역사에 획을 그은 제품들을 각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뱅앤올룹슨이 당대의 라이프스타일과 미학을 결정해온 오브제였음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2. 가족 서사를 통해 영속성을 강조하며 세대를 초월해 계승되는 가치를 전달
광고에서는 시대를 관통하며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설정하여 자사 제품이 세대를 넘어 물려받는 가치 있는 자산임을 강조한다. 외형적 유사성과 대대로 계승되는 소품 등의 연출은 긴 시간을 공유하는 가족의 유대감을 암시하며, 행선지에 미래 세대를 포함함으로써 뱅앤올룹슨이 과거를 넘어 미래의 삶까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 메인 카피의 핵심 단어를 중의적으로 사용해 브랜드 철학 강조
수직으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를 핵심 장치로 설정하여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시각화한다. 엘리베이터의 상승(Elevate)은 1920년대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브랜드의 역사적 진보를 상징하는 동시에, 자사의 사운드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Elevate)시킨다는 브랜드 철학을 직관적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4. 인터랙션 요소를 담아 고객이 몰입형 경험을 느끼도록 설계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브랜드답게 3D 입체 음향인 바이노럴 사운드 기술을 광고에 적용하여 시청자에게 압도적인 청각적 자극을 선사한다. 이어폰 착용 시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과 대비되어 극적인 개방감을 제공한다. 이는 기술 상향 평준화 시대에 뱅앤올룹슨만이 줄 수 있는 독보적인 공간 음향 기술력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5. 제품과의 물리적 터치를 기점으로 환상적인 순간을 연출해 정서적 애착 강화
인물이 제품을 만지거나 다이얼을 돌리는 순간 공간과 조명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환상적인 연출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정서적 몰입을 강화한다. 이는 사용자가 다가오면 조명이 켜지거나 형태가 변하는 뱅앤올룹슨 특유의 물리적 사용자 경험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결여되기 쉬운 ‘만지는 감각’의 즐거움을 자극하며 소비자에게 제품과의 깊은 정서적 애착을 형성하게 한다.
커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위기와 극복
글로벌 식량 원자재 시장은 이른바 ‘ABCD’로 불리는 4대 메이저 기업이 전 세계 교역량의 약 80%를 지배하는 강력한 과점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시장 환경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커널(Kernel)은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 시장의 15%를 점유하며 메이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보적인 농산업 기업으로 성장했다. 커널은 생산부터 가공, 수출까지 전 과정을 내부에서 통제하는 수직 계열화 구조를 통해 글로벌 곡물 공급망의 핵심 축을 담당하며 우크라이나 농업의 자부심을 상징해 왔다.
하지만 ‘유럽의 빵 바구니’라 불릴 정도로 곡물 수출의 중심을 맡았던 우크라이나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국가 경제의 근간인 농업 부문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장기화된 전쟁으로 국토의 약 30%가 지뢰와 불발탄으로 오염되어 농지로의 접근 자체가 차단되었으며, 댐 붕괴와 항만 봉쇄 등 수조 원 규모의 인프라 파괴가 뒤따랐다. 이는 우크라이나 GDP의 28.8% 급감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식량 가격을 요동치게 하며 글로벌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리스크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농업의 주축인 커널 역시 전쟁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수출량과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급감하며 매출이 35% 이상 폭락했고, 인력 유출과 물류비 상승이라는 운영 위기에 직면했다. 더욱이 위기 상황 속에서 단행된 창업자의 자진 상장폐지 시도는 소액 주주들의 반발과 금융 당국의 제재를 불러오며 기업의 투명성과 거버넌스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물리적 자산의 붕괴를 넘어 브랜드의 존재 이유까지 의심받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커널은 기술을 통해 농업을 재설계하는 애그테크(AgTech)를 새로운 돌파구로 낙점했다. 특히 드론 기술은 지뢰 오염이나 인력 부족으로 접근이 불가능해진 농지를 관리하고, 작물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하여 자원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술 혁신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를, 커널은 창의적인 프로모션으로 드러냈다.
위험한 땅에서 수확한 희망: 지뢰밭 꿀
커널의 ‘지뢰밭 꿀(Minefield Honey)’ 프로모션은 전쟁으로 인해 경작이 불가능해진 지뢰 매립지를 자사의 농업 기술과 자연의 생명력으로 복구하여 우크라이나 농업의 재건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커널은 농민의 접근이 차단된 위험 지대에 드론을 투입해 밀원 식물 씨앗을 공중 살포하고, 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수 벌집을 설치하여 채밀에 성공했다. 이렇게 생산된 꿀을 ‘Minefield Honey’라는 브랜드로 제품화하여 맥주·위스키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외무부와 협력해 외교 파트너들에게 전달하는 외교 도구로 활용하며 수익금 전액을 지뢰 제거 비용으로 기부하는 혁신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그 결과 이 캠페인은 전 세계 600건 이상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약 54억 원의 미디어 노출 가치를 창출했다. 특히 100인 이상의 외교 파트너에게 전달된 이후 지뢰 제거 기금 기부 요청 수락률이 60%에 달하는 등 실질적인 국제적 연대를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1. 기업 외부 리스크를 기술로 해결한 창의적 선순환 구조 구축
커널은 전쟁이라는 압도적인 외부 위기 앞에서 ‘비접촉 농업’이라는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며 사용 불가능했던 경작지를 새로운 수익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비접촉 농업 → 벌꿀 생산 → 판매 수익 기부 → 지뢰 제거’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커널은 단순한 전쟁 피해 기업을 넘어 사회적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주도적 기업으로서 브랜드 포지션을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2. 역설적 네이밍과 감각적 치환을 통한 임팩트 강화
‘지뢰’라는 파괴적인 상징과 ‘꿀’이라는 달콤한 오브제를 결합한 ‘지뢰밭 꿀’이라는 네이밍은 소비자에게 강렬한 인지적 대비와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는 전쟁의 참혹함을 추상적인 정보가 아닌 ‘맛’이라는 감각적 경험으로 치환하여 전달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우크라이나 농업이 처한 위기와 재건의 희망을 보다 깊이 있게 체감하도록 만들었다.
3. 공공 파트너십을 통한 기업 이미지 및 신뢰 회복
우크라이나 외무부와의 공식 협업을 통해 단순한 기업 홍보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외교 캠페인으로 프로젝트의 위상을 확장했다. 자국의 문제를 자국 기업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하는 모습을 국제 사회에 증명함으로써, 과거 거버넌스 리스크로 훼손되었던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뱅앤올룹슨과 커널의 사례는 성격은 다르지만, 결국 브랜드가 직면한 고민과 위기를 기술과 서사를 통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두 브랜드는 과거의 유산이나 외부의 파괴적 리스크에 함몰되지 않고, 이를 자사만의 감각과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길을 찾았다.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브랜드의 힘은 어려운 시기에 던지는 혁신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진정성 있는 답변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고려대 경영학과 장윤서/ yunnso@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