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과 <슈퍼맨>이 건넨 성장의 메시지

by 안지원

제임스 건의 <슈퍼맨>(2025)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슈퍼맨의 양부모가 건넨 메시지는 분명히 울림이 있었고,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하지만 그 울림이 정확히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좋았다", "감동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들어가려 하면 언어가 막혔다.


그러다 어느 날, 제임스 건이 슈퍼맨을 만들 때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는 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2023)을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내가 슈퍼맨을 보며 느꼈던 감정의 실체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카미카제 임무에서 도망친 남자,

그리고 결국 자신의 뜻으로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내가 <슈퍼맨>에서 느꼈지만 설명하지 못했던 정서를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과 슈퍼맨은 겉모습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본질에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흐르고 있었다.


바로 부모의 메시지를 넘어서는 성장,

그리고 그 메시지를 스스로의 해석과 선택으로 바꿔나가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이 두 영화는 내내 이렇게 말한다.

“부모의 말은 등불이 될 수 있지만, 길을 걸어가는 건 너 자신이다.”




살아돌아오라는 말, 그리고 그 무게

image source: Toho Co., Ltd.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주인공 쇼는 카미카제 특공 임무에서 돌아온 겁쟁이다.

적어도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여긴다.

비행기가 고장난 척 임무에서 빠졌고, 고질라의 습격 때 총을 쏴달라는 동료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전우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은 그 이후의 삶을 잠식해버렸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무섭고 살고 싶어서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엔 전쟁에 나가기 전 부모가 남긴 한마디가 깊이 박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 오거라.”


그 말이 생존의 이유이자 핑계였고, 동시에 끝없는 죄의식의 씨앗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쇼는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던 집은 이미 무너져 있었고, 부모님 역시 세상을 떠난 뒤였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그는 말 그대로 텅 빈 삶과 마주한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살아 있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되었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었고, 스스로를 벌주며 살아갔다.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심에 시달리고, 누군가를 지켜낼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리노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리노는 공습으로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아기 아키코를 돌보고 있었다.

상실과 고립 속에 마주친 이들은 처음엔 서툴렀지만, 점차 서로의 공허를 메워가며 함께 살아가게 된다.

쇼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그들과 함께하며 마치 가족 같은 일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자신에게 기대어 살던 리노와 아키코라는 존재를 통해 조용하지만 따뜻한 일상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는 부모님의 제사 앞에서 조용히 묻는다.


“이제 끝내도 될까요.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이 말은 자칫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다.

부모가 “살아서 돌아오라”고 말했는데, 그 앞에서 “이제 끝내도 될까요?”라고 묻고,

곧바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는 바로 쇼의 삶이 지닌 내면의 복잡함, 그리고 변화의 전조를 가장 정확히 드러낸다.


이 말은 곧 전환점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타인의 말이 아닌 자신의 뜻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순간이었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은, 생명을 지켰지만 동시에 삶을 가뒀다.

이제 그는 그 말의 무게를 내려놓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숨지 않는다.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마지막엔 모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거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진심으로 죽으려 했기에 살아남는다.

그는 이제 살기 위해 도망친 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싸운 사람이 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 어른이 된다.




나의 뜻으로

superman-2025-12.jpg image source: Warner Bros. Discovery, Inc.

슈퍼맨에서 역시 주인공은 끊임없이 친부모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살아간다.

고향의 기억이 없는 슈퍼맨은 친부모가 남긴 음성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 메시지는 지구에서 외계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위로였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완전하지 않았다.

저장된 메시지는 훼손되어 중간 이후가 끊겨 있었고,

그는 그 반쪽짜리 메시지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보완하며 살아왔다.


그는 지구의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약한이들을 보호하는 인생을 당연시 여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해 왔지만,

슈퍼맨은 그것을 스스로 정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이게 부모님의 뜻이라며 믿고 산다.

그 선택은 때로는 세상의 오해와 미움을 사게 했고,

사랑하는 사람조차 그의 방식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잃어버린 후반부 메시지가 복원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가 믿고 살아온 가치관과는 충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붙잡고 있던 삶의 기준이 뒤흔들리는 순간,

슈퍼맨은 정체성의 근본부터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메시지를 듣게된 사람들 역시 슈퍼맨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지구에서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였다. '

그들은 말한다.


“부모란 자식에게 뭐가 돼라 마라 말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실수하고, 다치고,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존재일 뿐이다.

너의 선택과 너의 행동이 너를 만든다."


그 순간 슈퍼맨은 깨닫는다.

자신이 믿고 살아온 메시지의 본질은 그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이어나가는가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외부의 말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그가 메시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구원하는 순간,

그리고 진정으로 어른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실된 성장이란

고질라 마이너스 원과 슈퍼맨은 겉보기엔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영화다.

하나는 동양의 괴수 재난 영화이고, 하나는 서양의 슈퍼히어로물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전쟁이나 초능력보다도 훨씬 더 깊은 인간적 서사를 다루고 있다. 바로 부모의 말로부터 벗어나 자기 삶을 선택하는 성장의 순간이다.


두 주인공은 모두, 부모가 남긴 말에 의지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 말은 때때로 그들을 구원하기도 했고,

동시에 그들을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 모두,

그 메시지를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자기만의 신념으로 실천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된다.


쇼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그 말에 얽매여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말을 넘어서 스스로의 의지로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을 하며 진정한 영웅이 된다.


슈퍼맨 역시 친부모의 음성에 기대어 자신을 정의했지만,

이제는 자기 해석과 신념으로 세상과 마주하겠다는 선택을 하며 진정한 어른이 된다.


두 이야기 모두,

‘말’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 이후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말을 남긴다.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자기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을 견디고, 흔들리는 마음 속에서도 자신을 붙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살아남는 존재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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