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감정을 말하다
DC의 새로운 세계관이 뜨거웠던 여름 속 영화 "슈퍼맨(2025)"의 개봉과 함께 시작되었다. 희망찬 슈퍼맨의 복귀는 많은 이들을 열광하고 땀 흘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드라마, "피스메이커 시즌2"는 그런 희망을 현실로 되돌려온다.
8월 말 첫 공개에 이어 10월 초 피날레까지, 막을 내린 이 드라마는 어찌보면 날이 쌀쌀해진 11월의 오늘날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나도 이 글을 쓰기까지 날이 추워지기 기다렸는지 모른다.
초라하기 딱이 없는 히어로
피스메이커는 트라우마를 가진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진심으로 세상에 나아가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가로 막고 있는거 같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진정한 히어로가 되고 싶어 지원한 면접에서 조차, 그는 조롱을 당하며 무시당한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앞서 그가 보였던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 친구 아데바요의 응원은 무참히 짓밟힌다.
무엇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그가 난교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희망의 상징을 노래하던 슈퍼맨 영화 감독과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직설적이며 왜설적이다. 그런 자극 속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영혼이 없는 존 시나의 모습은 마취 상태에 이른듯한 느낌을 준다.
파티를 뒤로 하고 무엇에 이끌린듯 찾아간 평행세계의 인생은 꿈만 같다. 죽은 아버지와 형이 살아있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세계는, 꿈의 황홀함을 노래하는 음악과 겹쳐진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느껴지는건 기쁨 보다는 좌절감이다. 우리 모두 꿈 꾸는 이상과 오늘의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기에, 드라마는 비현실을 다루면서도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과거의 잘못을 속죄 받지 못하고 사랑에도 좌절 당하며 사회의 존중 없이 살던 피스메이커는, 꿈과 같은 평행 세계로 영원히 넘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신의 부재를 느끼며 남겨질 친구들에게 단 편지 한장만을 남기고 작별을 고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 속 버려진 인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November Rain
꿈과 같은 세상으로 넘어가는 피스메이커와, 남겨진 편지를 읽는 친구들의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November Rain다.
"너의 눈을 보면 억눌린 사랑이 보여
(When I look in to your eyes I can see a love restrained)"
노래의 첫 가사는 피스메이커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눈을 바라볼때 흘러나온다 . 사랑 노래 조차도 내면의 이야기로 바꾸는 제임스 건 감독의 집착이 보인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내릴때는 사랑을 지키기 힘들다는 이 노래의 비극은 쌀쌀해진 날씨 속 의미를 더한다. 자신의 세상이 아닌 저 너머의 다른 세상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비행하는 피스메이커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기에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12월이 오기 전, 차갑기만한 11월의 모습을 너무나도 잔인하게 그린다.
마지막 피날레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추천하며 글을 쓰려했던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11월은 춥고 힘든 달이다. 세상의 위로를 받기에는 따뜻하고, 홀로서기에는 너무나도 차갑다. 다른 세상에 넘어가서라도 희망을 찾으려는 한 남자의 고독을 추적하는 드라마는 해가 짧아진 11월의 우울감을 공감이라도 해주는듯 하다.
(피스메이커 시즌2는 쿠팡플레이에서 시청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