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스페셜> 발굴추적 114년 전 한국인의 목소리

오늘 이야기 할 다큐멘터리는 연식이 좀 됐다. 2010년 방송된 다큐멘터리이니 16년 전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된 계기는 BTS 때문이다. 3월 21일 방탄소년단(BTS)이 광화문에서 하는 복귀 이벤트를 위한 프로모션용 영상이 이 다큐멘터리와 관련이 있다. BTS의 복귀 이벤트의 공식 명칭은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ARIRANG)이다.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xukk6JO9i0


유튜브 영상에서는 자신들이 영감을 받은 사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896년 5월 8일 워싱턴포스트에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온 7명의 한국(정확하게는 대한제국의 유학생이다) 유학생들이 부른 아리랑 녹음에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BTS가 원통형 레코드에 담긴 옛날 노래를 듣는 애니메이션인데 7명의 한국 유학생이 미국으로 가는 여객선에 타기 위해 뛰어가고 미국에 도착해 미국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있다. BTS가 7인조 그룹인데 미국으로 유학을 간 학생의 수도 7명인 것은 우연은 아닐 것 같다.


BTS 유튜브.jpg BTS 프로모션 영상속 내용 설명. 1896년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설명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BTS가 영감을 받았다는 1896년 미국 유학생들이 부른 아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방송 정보를 잠깐 살펴보겠다.

<KBS 스페셜> 발굴추적 114년전 한국인의 목소리

방송일 : 2010년 7월 18일

연출 : 이호경

내레이션 : 오정해(배우)

다시보기 링크 :

https://youtu.be/3VKhvEoyZ-g?si=U58v2vavGCZljm1j


16년 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이지만 유튜브에서 좋은 화질로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업로드되어 있는데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방송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업로드에서는 마지막 에필로그와 엔딩 크레딧이 빠져있는 것도 있고 전체 영상이 다 올라가 있는 영상물도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와 엔딩 크레딧이 빠진 영상은 아쉬움이 크다. 에필로그가 주는 여운을 칼로 무 잘라버리듯 잘라낸 것 같아 기분이 영 좋지않기 때문이다. 이 링크는 전체영상이 다 올라와 있어 그런 아쉬움은 없다.


배우 오정해를 내레이터로 선정한 것은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 소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내레이터를 고르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업계 관계자’로서 한층 감정이입 된 내레이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데 내레이션을 해 보지 않은 사람도 있어 조금은 모험이 될 수 도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정해는 소리꾼이면서도 배우이기 때문에 원고를 읽는 발음 등이 기대에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정리해볼까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음성 자료로부터 시작한다. 앨리스 플레처(Alice C. Fletcher)라는 인류학자가 1896년 7월 24일 녹음한 6개의 원통형 음반이다. 음성의 주인공이 메모로 남겨져있는데 Jong Sik Ahn, He Chel Ye, Song Rong 등 한국식 이름이다. 이 음반은 한국인의 노래 소리가 최초로 녹음된 기록이다. 이 음반을 처음 찾아낸 사람은 메릴랜드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로버트 프로바인(Robert Provine) 교수다.


<발굴추적 114년전 한국인의 목소리>는 프로바인 교수가 찾아낸 원통형 음반에 녹음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목소리를 추적하는 사람들이 육상경기의 계주를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바뀐다는 것이다. 분야별 전문가들이 추적을 이어가는 구조다.


미국에서는 프로바인 교수가 계속해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고 있었다. 그가 발견한 자료는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사였다. 1896년 5월 8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Seven Koreans At Howard”라는 제목에 헤드라인은 “Ran Away from Home to be educated in United States”였다. BTS의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바로 그 기사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학생들이 이날 있었던 사교 모임에서 한국의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진짜 한국 음악(real Korean melody)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2009년 한국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환교수로 온 프로바인 교수는 정치학을 전공한 이완범 교수에게 이들의 정보를 주고 추적을 부탁하고 근현대 한국정치외교사에 관한 연구가 전공인 이완범 교수가 이들이 대한제국 이후 일본으로 간 관비 유학생임을 찾아냈다.


이완범 교수의 추적으로 이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1895년 5월초 100 여명의 관비 유학생이 게이오의숙(현재의 게이오대학)으로 보내졌고 이들중 6명이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간 것이다. 이들은 1896년 아관파천으로 자신들을 일본에 보낸 개화파가 실각하고 친러파가 등장하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졌다고 판단해 일본으로 떠나 미국으로 간 것이다. 이완범 교수가 찾은 관비 유학생들이 발간한 잡지인 친목회 회보에는 1차로 6명, 2차로 2명 등 총 8명이 미국으로 갔다고 밝히고 있다. 친목회 회보에는 육인일동암도(六人一同暗逃), 6인 모두가 몰래 도망갔다고 하여 이들의 미국행이 정치적인 이유임을 짐작하게 한다. BTS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젊은 남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BTS의 애니메이션에는 밝고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 이들의 마음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이완범 교수는 미국에서 자료수집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방선주 교수에게 바톤을 넘겼다. 방선주 교수는 미국 국립문서관리보존청(National Archives)에서 한국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내신 학자이기 때문에 이완범 교수가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방교수는 이들이 다녔던 하워드 대학의 1896년 연례보고서에서 이들의 사진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냈다. 이러한 추적을 통해 이들이 누구인지 퍼즐이 완성된 것이다.


또 하나 추적은 정창관이란 분을 통해서 시작됐다. 프로바인 교수가 원통형 음반을 1998년 한국을 방문해 이 음반을 한국에 소개했으나 한국 국악계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이 음반에 관심으로 보인 것이 정창관(한국고음반 수집가 겸 연구가)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미국에서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유로 녹음이 되었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정창관 씨는 일본의 한국 유학생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는 김상기 충남대 교수를 통해 유학생의 주소와 가계가 적혔있는 신상 정보가 있는 명단을 확보하고 노래를 부른 3인 중 이희철의 후손을 찾아냈다.


에필로그가 없는 영상을 본 분들은 알기 어렵지만 에필로그 부분에는 게이오의숙(게이오대학)에서 제작진에게 보내 준 사진 한 장이 나온다. 그 사진은 1895년 5월 게이오의숙에 입학한 대한제국 유학생들의 단체 사진이다. 사진의 뒷면에는 유학생들의 이름이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 적혀있는데 이희철의 이름도 있었다. 노래의 주인공 이희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에필로그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발굴추적 114년전 한국인의 목소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연출자의 특성에 따라 연출자의 시선에서 추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전문성을 갖고 있는 학자들을 통해 이들의 실체를 추적하는 구성을 택했다. 추적에 신뢰를 주는 구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 도서관에 남아있는 원통형 음반을 통해 최초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국내정치의 격변으로 미국으로 도망쳐 간 젊은 유학생들의 인생 행로를 추적을 살펴보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이들이 최초의 BTS일까? BTS는 이들의 이야기를 왜 자신들의 복귀이벤트에 활용했을까? 안정식 등 유학생이 부른 아리랑과 BTS가 자신들의 영상에서 부르는 아리랑은 같지 않다. 이들은 BTS의 영상속 모습처럼 기대에 찬 밝은 얼굴로 미국행 배에 탔을까? 이들을 내세운 BTS는 광화문 광장에서 화려한 복귀 쇼를 하지만 미국으로 간 유학생들은 어찌 됐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7인의 유학생들은 금의환향 하지 못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태어나 대한제국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를 산 젊은 유학생들의 신산스러운 삶의 궤적이 마음에 남는 다큐멘터리였다.


검색을 해보니 연출자인 이호경 PD가 쓴 제작기가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연출자의 기획의도와 기획의도를 살리기 위해 어떠한 구성 방법과 촬영을 했는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마지막의 에필로그에 들어간 게이오의숙의 사진은 그의 개인적인 노력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보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월간 신문과 방송 2010년 9월호

477호 2010 09_[취재기 - 제작기]_15년의 집념으로 되살아난 한국인 최초의 음성기록 취재기 - KBS스페셜 '발굴추적 114년 전 한국인의 목소리' -이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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