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일(화)부터 5일(목)까지, 그리고 일주일 뒤인 12일(목)에 4부작 다큐멘터리 <KBS 대기획 성물>이 방송됐다. 3월 3일은 1973년 KBS가 과거 문화공보부 산하의 방송국에서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로 전환한 날로 KBS는 이날을 공사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KBS는 공사창립일을 기념하며 매년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송하는데 <KBS 대기획 성물>은 KBS의 창사 특집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다. 참고로 방송사를 방송국이라고 하는 것은 KBS가 정부 부처의 한 국(局)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도 개국(開局)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다. 하나의 회사이기 때문에 방송사라고 하는 것이 맞다.
4부작의 편성이 3월 3일~5일, 12일로 분리된 것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편성이다.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4부작을 연속 편성하던가, 2부작씩 2주 연속 편성을 하지 않았다. 3편은 몰아서 편성하고 마지막 편은 일주일 뒤에 편성하는 것은 조금은 이례적인 편성 같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알 수가 없다. 금요일이었던 지난 6일 방송된 <추적 60분>의 아이템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내용인데 긴급한 시의성이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 한 주일 뒤에 방송해도 될 듯하지 않았나 싶다.
<KBS 대기획 성물>은 성물(聖物)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적으로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교는 오랜 역사 동안 인간들의 삶을 지배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종교가 있는 시청자들에게 소구력이 있는 기획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인지 시청률이 잘 나왔다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https://tvreport.co.kr/broadcast/article/1013784/
방송 정보를 잠깐 살펴보겠다.
<KBS 대기획 성물>(4부작)
1부 언약 방송일 : 2026년 3월 3일(화)
2부 초대 방송일 : 2026년 3월 4일(수)
3부 말씀 방송일 : 2026년 3월 5일(목)
4부 마음 방송일 : 2026년 3월 12일(목)
연출 : 김동일, 이송은, 김은곤
내레이션 : 김희애(배우)
다시보기 링크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holyelements/pc/index.html
4부작에 소개되는 성물을 간단히 살펴보면 <1부 언약>은 에티오피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성물로 십계명이 새겨진 ‘언약궤’, <2부 초대>는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의 성물로 예수가 죽은 뒤 그의 몸을 싼 것으로 알려진 ‘성의’, <3부 말씀>은 튀르키예 모스크에 있는 ‘쿠란’ <4부 마음>은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고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지장보살, 미즈코 지조(水子地蔵)이다.
이 글은 <1부 언약>과 <2부 초대>에 대한 글이다.
<1부 언약>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성물인 ‘타봇’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봇은 모세가 받은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모시는 언약궤로 고대 에티오피아 시바 왕국의 시바 여왕이 솔로몬으로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내전 지역이었던 북부의 게랄타 지역의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교회에 올라가서 그곳의 타봇(복제품)을 지키는 사제가 되기를 꿈꾸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1부 언약>은 절벽 위의 교회에 보관되고 있는 성물이라는 희소성과 영상미, 주인공인 크브롬 소년의 이야기 등이 비교적 잘 섞여 구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 산악인도 오르기 힘들 정도로 험한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을 정도로 영상미가 좋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타봇과 신앙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2부 초대>는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에 보관되고 있는 성의가 성물이다. 토리노 성당의 성의는 예수가 죽고 나서 그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로 알려져 있다. 네거티브 촬영을 한 후 예수의 형상으로 여겨지는 인물의 모습이 보여 가톨릭의 주요 성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2부 초대>는 10살 무렵 악성 종양으로 시력을 잃은 한 수녀의 이야기이다. 촬영의 공간은 크게 토리노의 수녀원과 마리아의 고향인 나폴리 두 곳으로 마리아 수녀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간다.
3부와 4부는 보지 않았다. 1부와 2부가 주는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무슨 다큐멘터리가 이렇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우선, 전체 타이틀인 성물(聖物)이 다큐멘터리 전반에 잘 반영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다. 1부의 성물인 언약궤, 타봇과 2부는 성물인 토리노 성당의 성의는 다큐멘터리 구성에 잘 녹아있는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성물’은 다큐멘터리의 기획 의도를 나타내주는 핵심 키워드인데 핵심이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성물의 실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안 보여준 것인지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성물에 대한 실체에 접근할 수 없어서였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성물은 잠시 소개하듯 스쳐 보내고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성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휴먼 다큐멘터리로 전환한 것이다.
그나마 1부는 타봇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조금은 밀도있게 전개되지만 2부는 인물과 성물의 연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인 마리아 수녀와 성의를 연결해 주는 구성이 보이지 않았다. 왜 성의를 아이템으로 골랐는지, 왜 마리아 수녀를 주인공으로 골랐는지 다큐멘터리를 보면 해답이 있어야 하는데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리아 수녀 개인의 서사로 성의와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2부의 성물인 토리노 성당의 성의는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방사성 동위 원소로 성의의 샘플을 검사한 결과 성의가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의 중세 시대 유물이라는 결과가 있었다. 또한 토리노 성당의 성의는 프랑스의 리레(Lirey)라는 곳에서 14세기 중반에 등장했고 이후 토리노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프랑스 리레 이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 초반에서 넬로 발로시노 토리노 성의 박물관장 스스로 ‘성의’에 대해 진위 논쟁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논쟁이 있는 소재를 왜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다.
각 에피소드의 부제인 ‘언약’과 ‘초대’ 역시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누구와의 언약인 것인지 누가 누구를 초대하는 것인지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좋은 다큐멘터리라면 보고 난 후 그 의미를 알 수 있을텐데 의문만 남는다.
창사 기념으로 내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예산을 사용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예산을 보탰다. 에티오피아와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의 해외 촬영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KBS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은 부실하다. 기본적인 보도자료도 찾을 수 없고, 각 에피소드에 대한 설명도 부실하다.
대기획으로 기획이 되었다면 그에 걸맞은 기획이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성물만으로는 이야기를 끌고 갈 힘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종교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성물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접근 가능한 성물과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성물을 찾아내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전에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많은 공부와 자료가 필요했을 것이지만 확보하지 못했다면 성공하지 못한 기획일 수도 있다.
범종교적인 아이템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종교에 대한 적절한 배분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좀더 대중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물>은 그런 면에서 모자라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가톨릭, 이슬람이 다루어졌고, 4편에서는 특정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다. 힌두교가 빠졌고, 불교의 경우는 한 편의 에피소드로 만들지 않았다. 성물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특정한 기준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종교를 상징하며, 누구나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물건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2편의 경우처럼 논란이 있는 성물을 선택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아무리 종교의 본질이 보지 않아도 믿는 것(Beati qui non viderunt et crediderunt / 보지 않고도 믿는 이는 복되도다)이라고 해도 말이다.
‘성물’은 촬영도 쉽지 않다. 신성시하는 물건이라 카메라 앞에 내놓기 쉽지 않다. 설득과 돈이 필요했을 것인데 이를 맞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KBS라도 국내에서도 박물관의 국보를 꺼내 달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 기획은 해외 촬영이기 때문에 사전 섭외가 핵심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 줄 정도의 KBS의 존재감이 있었을까? 이러저러한 사정을 감안해 이 정도 만든 것에 박수를 쳐줘야 할까? 최초의 기획이 무리한 것은 아니었을까? 촬영의 진행 여부를 보고 기획안의 수정과 내용의 수정은 적절하게 있었을까?
하지만 많은 시간과 제작비가 투자되었고 방송을 마쳤다. 시청률이 잘 나왔다는 기사도 있지만 나의 눈에 비친 결과물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