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다큐멘터리 <1980 사북>

지난 12월 중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려 극장을 찾았다. 그동안 해외 다큐멘터리 시장에 나가 극장에서 하는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본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내 돈을 내고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날 본 다큐멘터리 영화는 <1980 사북>이었다.


시사회에도 초대를 받았지만 개인적인 일정상 시사회를 가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극장에서 직접 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일 듯싶어 극장을 찾았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일반 영화와는 달리 상영이 잦지 않고 방송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다시 보기가 없다. 극장에서 본 기억만을 마음에 담아둬야 한다. 복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1980 사북>은 독립 다큐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박봉남 감독의 작품이다. 박봉남 감독은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선박 해체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위험하고 고단한 삶을 다룬 아이언 크로우즈 (Iron Crows)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초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대상을 받은 바 있다.


<1980 사북>

감독 : 박봉남

러닝타임 : 124분


<1980 사북>은 2025년 10월 극장 개봉을 했지만 2024년 여러 국내 영화제에 상영되었고 수상을 기록했다.


-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장편 대상 (2024)

- 제22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25)


박봉남 감독은 2025년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에 <1980 사북>을 출품하며 연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19년 5월 초 사북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고,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140회 넘게 촬영을 했고, 100여 명 넘게 인터뷰를 했고, 세상에 남겨진 모든 아카이브를 찾은 것 같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지하 갱도, 막장에 꼭 들어가서 그 현장을 느끼고 싶었는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곳에 한 번도 안 가 보고, 고단했던 그들의 노동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1980년, 그 야만의 시대가 남긴 상처를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s://siff.kr/films/1980-%EC%82%AC%EB%B6%81/


<1980 사북>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다큐멘터리는 1980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이라는 특수하고도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1980년의 여러 사건들을 다룬 현대사 다큐멘터리가 방송을 중심으로 많이 제작되었지만 ‘사북사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박봉남 감독은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북사태’에 천착했다. 2019년부터 6년간 사북에 전념한 것이다.


방송 다큐에서는 KBS에서 방송된 <인물현대사>에서 다룬 적이 있고 다른 방송은 기억에 나지 않는다. 2004년 11월 방송된 <인물현대사>는 ‘사북광부 이원갑-우리는 폭도가 아니었다’라는 부제로 당시 사북 광부를 대표했던 이원갑을 중심으로 사북 사태의 발생 원인과 상황 전개를 다루었다. 사북사태는 경찰과의 충돌 이후 이원갑을 중심으로 하는 광부들과 강원도지사 간의 협상으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군이 개입하며 광부들이 폭도로 몰리며 고문을 받고 무고한 옥살이를 했던 과정을 보여주며 그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던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인물현대사> ‘이원갑 편’은 폭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침묵을 강요받아 왔던 사북 광부들이 목소리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물현대사-사북광부 이원갑, 우리는 폭도가 아니었다>는 KBS의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다. 방송일이 1996년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GCDls0kcS0


반면 박봉남 감독의 <1980 사북>은 결이 다르다.


박봉남 감독이 연출의도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듯이 사북 사태를 겪은 사람들에 집중했다. 1980년 이후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1980년 사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있는 가를 천착한 것이다. 사건의 주역이었던 이원갑을 비롯해 의도치 않았던 피해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또한 성실하게 당시의 자료를 수집했다. 대한 뉴스에서 당시 일간지에 실린 사진의 원본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아 1980년 사북을 재구성한 것이다.


라포(rapport)라는 말이 있다. ‘친밀한 관계’ 정도의 뜻을 가진 단어다. 이러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연출자와 출연자가 라포를 형성해야 프로그램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방송 다큐는 짧은 제작기간이라는 한계가 있어 라포를 형성해서 촬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를 믿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립 다큐멘터리를 방송 다큐멘터리보다 제작 기간이 길기 때문에 라포를 형성할 시간이 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그것도 감추고 싶었던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라포 없이는 될 수 없다.

내게 인상적인 것이었던 것은 이원갑과 노조지부장 가족 간의 갈등이었다. <인물현대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북 사건의 본질과 인물에 초점을 두는 주제의 방향성을 방해해 본질을 흐리거나 관심을 흩어놓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모이게 되면 이런 사태는 의도치 사건으로 인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신문의 1면을 장식한 노조지부장 부인 린치 사건이다. 노조지부장 대신 노조지부장의 부인이 분노에 찬 광부들의 사적 폭력을 받았고 그 한 장의 사진은 광부들을 폭도로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원갑과 노조지부장 부인 모두 사북 사건의 피해자인데 사북에 남은 사람들이 서로 마주하기 불편해하는 사실이다. 박봉남 감독 역시 이 부분이 제작에 있어 난관이었던 것을 보인다. 하지만 피해 가지 않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 내용은 PD저널과의 인터뷰에 소개되어 있다.

피디저널 링크 :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982


<1980 사북>은 마지막에 화해를 시도하는 이원갑을 따라간다. 이런 점이 독립 다큐멘터리가 갖는 장점이다. 양측 간의 화해는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쉽지 않다. 양측 간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박봉남 감독은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냈고 이는 사북 사태가 남긴 상처들이 4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의 눈에 아쉬웠던 점이 몇 군데 있었다. 하나는 화자(話者), 프리젠터다.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이 프리젠터의 역할을 하며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인트로 부분에서 그의 소개와 역할이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왜 황인욱이라는 사람이 프리젠터를 맡았는지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또 하나는 인터뷰 삽입에 관한 부분이다. 인터뷰들은 흩어져있는 내용을 하나로 모아가기 위해 사용된다. 적절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앞 뒤의 상황을 받쳐주는 인터뷰이어야 하고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인터뷰를 이동 중인 트레킹 샷에 많이 썼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게는 좀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은 엔딩이다. 엔딩은 동원탄좌의 마지막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하는 모습들이었는데 나였다면 그런 엔딩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문을 닫은 시점은 2004년이고 이즈음에 촬영한 영상이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집중력을 놓지 않으려 했는데 엔딩의 여운이 남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권력을 잡으려는 군부는 광주에 앞서 공수부대를 사북에 투입하려고 하기도 했고, 광부들과 강원도지사 간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는 광부들과 가족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며 폭도로 만들어 옥살이를 시켰다. 그리고 그해 10월 전두환이 사북을 방문했고 사북에는 ‘대통령 오신 우리 마을’이라는 문구를 새긴 기념비가 세워졌다.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인데 나 같았으면 이 부분은 엔딩으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대통령오신우리마을.jpg 사진 출처 : 프레시안(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50346)


‘막장’이라는 말이 있다. 광부들이 일을 하는 곳이지만 사회적으로 갖는 함의는 인생의 마지막에 몰린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누가 막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겠는가? <1980 사북>은 막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고, 노동자의 대표가 노동자를 대신하지 않고 기업의 편을 들었던 시대에 자신들의 권리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장했지만 결국은 폭도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980 사북>은 사회의 변혁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캐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크게 보면 서로 다른 처지도 아니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버린 사람들, 권력을 잡기 위해 이들을 고문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린 폭력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긴 영상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나도 어느새 짧은 영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긴 호흡의 영상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아 졌다. 극장에 앉아 2시간이 넘도록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의 봄, 광주민주화 항쟁이 있던 그해 1980년 사북에서 있던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1980 사북>은 2025년 극장 개봉 이후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다큐멘터리다. 독립다큐로서 이렇게 눈길을 끈 다큐멘터리는 흔하지 않다. 다음의 링크는 <1980 사북>의 이채훈 전 MBC PD의 감상평이다.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