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특집 다큐멘터리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

지난 연말인 12월 27일(토) 밤늦은 시간 TV를 돌리다 채널을 고정하고 빠져들 듯 본 다큐멘터리가 있다. KBS 1 TV에서 방송한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이다. 끝날 때가 되어 엔딩 크레딧을 보니 KBS 대구총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였다. 이러저러한 사연이 있겠지만 지역총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밤 10 시대에 전국 편성을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지역총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밤 10 시대에 방송되다니... 그것도 좌우에서는 연말이고 주말이어서 더 재밌는 예능 방송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편성이구나 싶었다.

프로그램 타이틀 :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
제작 : KBS 대구총국

연출 : 지우진

내레이션 : 이성민(배우)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5-0300&program_id=PS-2025239405-01-000&section_code=05&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v_Nv5SxjDg


내레이션 목소리는 배우 이성민이었다. 다큐멘터리 PD들이 제작의 끝 무렵에 고민하는 것이 누구에게 내레이션을 맡길 것인가인데 연출인 지우진 PD는 배우 이성민을 선택했다. 많은 특집 다큐멘터리가 내레이션을 유명 배우에게 부탁하는데 예능보다 관심이 적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특성상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의 유명세에 기대 홍보를 해 볼 심산으로 보인다. 이성민 배우의 내레이션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생각보다는 전달력이 좋게 느껴졌다. 지역에서 만드는 다큐멘터리에 이렇게 유명 배우를 섭외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배우 입장에서는 전국방송과 적절한 비용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 입장에서는 충분한 비용을 맞춰주기도 쉽지 않고 더빙도 지역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에 머무르게 된 것은 이 사람 때문이었다.


세키노 다다시(関野貞). 세키노 다다시는 도쿄제국대학의 교수로 건축을 전공한 관학자였다. 관학자(官學者)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 그대로 그는 그 시절 일본 제국주의를 구현하는 학자였다. 학문의 목적이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평가로는 세키노 다다시는 고고학계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같은 존재다.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을 침탈하는 역할을 했다면 세키노 다다시는 우리의 역사를 침탈하는데 선봉에 섰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Tadashi_Sekino.jpg 세키노 다다시(関野貞) / 사진출처 : 위키피디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은 가야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가야에 대한 문헌은 거의 없다.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빈약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대표되듯 가야의 역사는 실체는 있었으나 기록으로는 의미 없는 존재이다. 가야의 존재는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이 가야 출신 집안의 후예라는 것 정도이다. 가야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에 의해 멸망한 잊힌 나라다. 그래서 가야와 관련된 프로그램은 하기도 힘들고 ‘재미’와 ‘관심도’ 측면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밀려 아이템으로 선정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가야에 대한 프로그램을 많이 했다. 가야가 있었던 경남의 지역 방송 이외에 전국 방송으로 가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지속적으로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곳은 KBS 말고는 없을 것 같다.

2021년 11월 16일, 23일 <KBS UHD 역사스페셜> 한국의 폼페이, 아라가야 2부작 - 1부 말이산고분군, 2부 불꽃무늬토기

2018년 3월 12일, 13일 공사창립 KBS스페셜 '가야' - 1부 강철 바다 2부 신화에서 역사로

2008년 3월 7일, 14일, 21일, 28일 '최인호의 역사 추적 제4의 제국, 가야' 4부작


이런 특집 성격의 시리즈 다큐멘터리 이외도 <역사스페셜>에서 가끔씩 다루기도 했다.


소설가 최인호는 말년에 역사 부분에 관심을 두고 집필을 했는데 가야를 포함해 4국 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하기도 했고, 강단 사학의 흐름은 아니지만 부여(또는 왜)를 포함해 5국 시대로 해야 한다는 책이 나오던 시대도 있었다.


가야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문헌 기록이 거의 부재하다. 따라서 문헌보다는 고고학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제작해야 한다. 가야 다큐멘터리의 기본 구조는 가야의 고분에서 발굴된 금목걸이와 금귀고리 등의 장신구로 대표되는 유물과 철갑옷 등을 중심으로 가야의 철강 기술과 금세공술을 보여주고 이러한 기술을 일본(왜)에 전파한 것으로 미루어 강력한 세력을 가진 왕국이었을 것이라는 내용을 따라간다.


유물을 증거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고고학’이 중요하다.


다시 세키노 다다시로 돌아가보자. 세키노 다다시의 연관 검색어는 ‘조선고적조사사업’, ‘조선고적도보’, ‘문화재’, ‘가야’, ‘낙랑’ 등이 될 것이다. 세키노 다다시는 건축을 전공이지만 일제의 고고학 발굴사업인 ‘조선고적조사사업’을 주도했으며 식민사관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핵심 연관 검색어라고 할 수 있는 ‘조선고적조사사업’은 조선 총독부의 가장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사업이었다.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고고학에서 찾아내는 사업이다. 한반도 북부는 고조선 시절부터 한(漢) 나라의 식민지였고 남부는 왜(倭)의 식민지였다는 증거를 고고학에서 찾아내는 사업이 바로 ‘조선고적조사사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평양에서는 한사군(漢四郡)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했으며, 경상도에서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部)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고적조사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진 곳이 평양과 가야가 있던 경상도 지역이었다. 우리가 아는 고구려 고분 벽화도 이때 발굴되었고 당시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사진 역시 이때 촬영된 것이다.


‘조선고적조사업’은 1909년 시작되어 태평양 전쟁시기까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5년 단위로 실시됐다.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증거를 찾기 위한 평양 조사와 임나일본부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고적조사 사업이 시행됐다. 신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에도 나와 있듯 왜가 신라를 침범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을 중심으로 고려의 고분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고려는 식민지배 이데올로기와는 크게 상관없기 때문에 큰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식민지배의 고고학적인 증거를 찾기 위한 무차별한 발굴이 벌어졌다.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은 일본의 관학자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대로 된 보고서 작성도 없이 파헤친 가야의 고분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해 나간다.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자료는 부실 투성이의 고적조사사업 보고서와 ‘조선고적도보’ 등에 남아 있는 사진 등이다.


조선고적도보 표지.jpg 조선고적도보 표지 / 이미지 출처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조선고적도보’는 중요한 문헌자료다. 고고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학문의 이름으로 삼국시대의 고분들을 발굴하면서 만들어낸 자료이기 때문이다. 50대들이 중고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본 삼국시대의 자료 사진들이 대부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들이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들의 생생한 모습들도 이때 촬영된 모습이고, 석굴암의 자료 사진도 모두 이때 촬영된 모습들이다.


특히 고구려 고분 벽화의 모습은 남북의 분단으로 접근할 수도 없고 벽화들도 훼손되어 발굴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귀중한 자료이다. 우리가 아는 현무, 주작, 청룡, 백호를 그린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져 있는 강서대묘, 무용총 등등이 모두 ‘조선고적조사사업’을 통해 촬영된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 3.png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고구려 강서대묘 내부 스케치 / 이미지 출처 : 국립문화유산원


고구려 고분 벽화 4-1.png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 중 청룡도 / 이미지 출처 : 국립문화유산원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교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특히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정인성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학과가 문화인류학과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고고학이 전공으로 일제 강점기 벌어진 조선고적조사사업 연구에 높은 전문성을 가진 교수다. 다큐멘터리는 정인성 교수가 유학했던 도쿄대학을 비롯해 당시 관학자들이 남긴 자료를 제작진과 함께 찾아가기도 한다. 아마도 정인성 교수의 도움 없이는 촬영하기 힘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기존의 역사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KBS의 역사 다큐멘터리의 기저에 깔려있는 정서가 ‘국뽕’이라고 본다. 2025년 12월 다시 시작한 <역사스페셜 시간 여행자>는 ‘세기의 전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을 다루었다. 민족의 위기를 극복한 의미도 있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려는 성격이 짙다. 가야를 다룬 다큐멘터리들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철의 왕국으로 왜에 강한 영향을 끼친 고대 왕국이라는 콘셉트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은 가야의 화려한 문화를 소개하기보다는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의 고고학적인 증거를 찾으려는 일본 관학자들이 남기고 간 상처투성이의 가야 고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문화침탈을 고발하고 문화재의 유출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고적조사사업’은 발굴의 탈을 썼지만 도굴이나 다를 바 없었고 발굴은 도굴범이자 밀매업자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오구라(小倉) 컬렉션’으로 알려진 일본의 한국 유물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유출된 문화재이다.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는 대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일본 기업가로 조선의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구라가 구매한 유물은 총독부가 실시한 조선고적조사사업참여한 도굴업자이자 밀매업자로부터 구매한 것이다. 그중 일부는 일본의 국보급 유물로 지정될 정도의 유물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일본으로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언급하며 반환을 요구했는데 그중 하나가 오구라 컬렉션이다. 오구라 컬렉션은 1981년 오구라의 아들들이 도쿄국립박물관에 1,100여 점을 기증해 전시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타이틀인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은 가야의 잃어버린 유산이자 그동안 침묵하고 이야기하지 않은 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잃어버렸다는(The Lost)는 사실 충분한 단어는 아니라고 보인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강탈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스페셜>에서도 ‘조선고적조사사업’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었다. 2010년 10월 30일 <창녕의 금동관모는 왜 일본의 국보가 되었나>이 그것이다. 두 편을 비교해 보면 인터뷰를 한 전문가들이 많이 겹친다. 두 프로그램 모두 일제의 ‘조선고적조사사업’을 다루고 있지만 <더 로스트 침묵의 유산>은 대구총국 제작이라는 특성과 고령군의 제작비 협찬을 받았기 때문에 가야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역사스페셜-창녕의 금동관모는 왜 일본의 국보가 되었나>는 조선고적조사사업과 문화재 유출, 특히 오구라 컬렉션과 한일협정 당시의 문화재 반환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qcjQ1KEnzM

이 둘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프로그램 외적인 부분으로 아쉬운 것은 제대로 된 홈페이지가 없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에 프로그램에 대한 이러저러한 정보를 담아 줘야 하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다행히도 다시 보기는 있다. 지역 총국이 제작하는 것이라 지역 총국에서 홈페이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만들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지역 총국이 이런 부분까지 관심을 두지는 않는 것 같다. 지역에서는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을 들여 제작하는 특집인데 좀 더 섬세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소소한 것이지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도쿄대학교’라는 표현이다. ‘도쿄대학교’가 아니라 ‘도쿄대학’이라고 했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 4년제 학위 수여 기관이 '대학'이며, '대학교'는 학위가 나오지 않거나 특정 부처(성청)에서 운영하는 특수 목적 기관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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