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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는삶 Jan 19. 2023

무등산이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설레는 삶

작년 하반기부터 내 삶의 루틴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주 한 번씩 동네 뒷산인 불곡산에 올랐다. 높이 382미터로 누구에게는 산책 수준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등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동네에 10년 이상 살다 보니 가끔 오르는 곳이었다. 난 등산이라면 질색을 했다. 언덕을 보기만 해도 숨이 찼다. 당연히 불곡산에 오를 때마다 4번 이상을 쉬어야 겨우 올랐다. 이런 내가 꾸준히 하면서 점차 만만한 산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쉬지 않고 곧장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 점차 다른 산도 욕심이 났다. 500미터, 1000미터 산도 오를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는 거다. 나란 사람이 과연? 매일 등산 유튜브를 보았다. 이제는 지리산, 한라산 오르는 게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첫 번째 도전 서막을 열다. 무등산

넘사벽으로만 여겨졌던 산을 오르고 싶었다. 첫 번째 선택한 곳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무등산이다.

높이 1100미터이다. 그저 설레었다. 정상에 선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란 어떤 것일까? 눈에 직접 담아볼 수 있을까? 혼자 가기에는 두려워서 조카에게 가이드를 부탁했다. 가기 전날 등산가방을 챙기면서도 이것저것 넣다 빼다를 반복했다. 겨울산이라서 어떨지 몰라서 아이젠과 스틱은 꼭 챙겼다. SRT를 타고 가는 동안 걱정만이 앞섰다.  광주송정역에 도착해서 컵라면을 사려고 했는데 편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정상에서 컵라면 흡입은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드디어 등반을 시작했다. 1차 도착지로 계획한 중머리재는 617미터 정도까지 올라가야 했다. 돌들이 많아서 조심조심 발을 디뎠다. 그다지 볼 풍경이 있는 게 아니라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머릿속에서는 끝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힘들다고 불평할 수도 없었다. 옆에서 착한 조카는 분위기 띄우려고 얘기를 계속했다. 겨우 몇 마디 대답만 했다. 아무런 말할 기운도 없었다. 




드디어 등반 시작하고 1시간 40분 만에 중머리재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는데 가방을 얌전히 세워놓지도 못하고 던지듯이 옆에 두었다. 붉어진 얼굴이 예쁘진 않지만 그저 기특한 나 자신이라서 인증숏을 필수로 남겼다.

해발 617미터 산은 태어나서 처음 와보았다. 사진만 간단히 찍고 다음 코스로 계속 나아갔다. 장불재는 해발 900미터 이상이다. 이상하게도 여기서부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초반에 힘든 코스를 넘겨서 그런 걸까? 깔딱 고개 같은 코스가 아닌 이상 해발 900미터라 해도 이미 해발 600미터를 올라온 상태라서 300미터만 올라가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이미 시야가 넓게 펼쳐지기 시작하니 시원하고 멋들어진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유튜브 영상에서만 보았던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감탄스럽기만 했다. 올라가면서 '와' , '어머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올라가다가 가끔은 발길을 멈추고 뒤도 돌아보았다. 점점 내 발아래 근사한 경치가 깔리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다른 봉우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면서 '세상별거 없네'라는 실없는 농담도 던져가며 산행을 계속했다.




보이는가? 장불재 해발 919미터. 내가 해낸 거다. 기분이 그저 좋아서 지친 느낌조차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펄쩍펄쩍 뛰었다. 이만큼 내가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남들은 20,30대 등산을 많이 했지만 50대인 지금은 무릎이 좋지 않아서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난 반대로 젊어서는 등산에 관심조차 없었다. 체력이 따라주질 않아서 늘 할 수 없는 거라 여겼다. 등산은 과거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걸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인생을 다시 사는 느낌이다. 어렵게만 여겨지던 게 관심을 갖고 하다 보니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었다.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쑥스러운 말인데 내가 체험하고 입 밖으로 내뱉는 게 신기하다.





간단히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오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시간여유가 좀 있어서 일단 더 가보기로 했다. 무등산에 유명한 주상절리를 안 보고 가면 서운할 듯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준비해 온 군밤 모자를 쓰고 두꺼운 겉옷을 풀장착했다. 이때부터는 그저 신나기만 했다. 전망이 확트여서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며 구경했다. 조금만 간 것 같은데 정상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경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주상절리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손으로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위치까지 다가갔다. 이제 정상이 바로 앞이다. 어서 가자!!!





해발 1100미터 무등산 서석대에 도착했다. 내 인생 이렇게 높은 산은 처음이다. 무엇이든 인생의 첫 경험은 잊지 못한다. 무등산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등산 시작하면서 남편이 선물로 사준 등산화에게도 수고했다고 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나랑 많은 길을 나아가자.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를 눈에 담으며 내려가기 싫었다. 그저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고 있고만 싶었다. 엄청 효능이 탁월한 눈 영양제를 투약한 듯했다. 살면서 뭔가를 가졌을 때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무등산 경치를 나도 가져온 거다. 절로 '좋다' , '행복하다' 라는 말이 나왔다. 누구 하고라도 공유하며 소유가 가능하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언젠가는 올 수도 있겠지. 난 오늘의 이 추억으로 한참을 살아갈 힘이 더욱 솟는다.  

내려올 때 다리는 후달리고 허벅지는 터질 듯했다. 무릎 통증도 약간 느껴졌다. 등산 4시간, 하산 1시간 30이 걸렸다. 하산시간은 짧지만 지루하고 힘들었다. 큰 돌이 많아서 내려올 때는 혹시라도 다칠까 더 긴장했다.

다시 SRT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피곤함과 통증이 밀려왔다. 몇 년 후에는 히말라야도 가고 싶다. 그런데 이 정도에 이렇게 피곤한데 히말라야에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왠지 내 몸에 겸손해졌다. 하고 싶은 마음 있다고 해도 좀 더 신중하게 다음 단계를 밟아야겠다. 




무등산을 오르기 전에는 '다음에는 무슨 산에 가지?'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갔다오니 다음 계획은 쉬엄쉬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연스럽게 정해보려고 한다. 무등산도 올랐으니 앞으로는 많은 산들을 정복할 수 있을 거다. 언젠가는 지리산에 올라가 '경이롭다.'라는 말을 내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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