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역차별’이라는 말을 견딜 수 없는가

by 욕망의 화신 경희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투쟁하다 보면 두 권리가 대립되는 현장에 서야 될 때가 있다. 그런 자리에 설 때마다 나는 늘 멈춰 서게 된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선이 아니라, 서로의 삶이 얽혀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민하게 되고,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할지 전문가에게 묻고 싶다는 갈망이 강렬해진다. 누군가 대신 답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솟구친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전문가들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안다. 장애인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 앞에 절대적인 심판관 같은 전문가들이 어디 있으랴. 이 싸움은 책상 위 이론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노동의 권리를 얘기하기 전에, 그 노동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중증장애를 가진 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치열하게 투쟁했는지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이동권을 위해, 활동지원을 위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위해 싸워야 했던 몸들,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이 되기 위해 매일을 버텨야 했던 몸들 말이다.

노동자들은 다른 선택지의 삶이 있지만, 중증장애를 가진 이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누군가는 직업을 바꾸거나 환경을 바꿀 수 있었지만, 우리는 존재 자체를 걸고 싸워야 했다. 가족들에게, 사회에서 버려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역차별’을 얘기하며 규정과 평등을 얘기하는 건 너무나 잔인한 행동이지 않을까.

나는 ‘역차별’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싫다. 단 한 번도 차별의 대상에서 벗어나보지 않았던 이들에게 역차별이라니ᆢ 그 말은 공정의 언어가 아니라,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덧대는 말처럼 들린다.


난 장애인의 권리와 노동의 권리가 충돌할 때는 어쩔 수 없다ᆢ

흔들리고 괴롭고 때로는 이율배반적이라는 말을 듣거나 어떠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다해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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