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구가 많은 인간이다

by 욕망의 화신 경희

중증장애인으로 살아온 시간 동안 내 미래는 늘 흐릿했다

가족에게 나는 보호해야 할 존재였지 삶을 설계해야 할 주체는 아니었다

막내가 어떤 삶을 꿈꿀 수 있는지 그 꿈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집 안에서 조용히 자라 스물다섯 해를 보냈다

처음 마주한 사회는 낯설고 서늘했다

배움도 경력도 없다고 느꼈던 나는 나를 숨기기 위해 애썼다

아는 척 괜찮은 척을 하며 버티는 동안 내 안에는 커다란 집이 지어졌다

그 집 깊은 방에는 작고 초라한 경희가 웅크려 있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면서 겉의 나는 변했다

그러나 마음속 집에 사는 작은 나는 여전히 몸을 접은 채였다

여성장애인연대에서 10년 넘게 활동했고 소수 정당의 창당위원장도 맡았다

이름은 조금씩 알려졌지만 그럴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혹시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

내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들키면 어쩌지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장애인인권연대 사무실을 열었을 때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에 닿았고 남편과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내 마음속 집은 점점 빛이 사라진 동굴이 되어갔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에 선 날도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고 음식은 목을 넘기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오직 고통 없이 끝낼 방법만 맴돌았다

그때 친구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해주었다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혹시라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마음이었다

두 시간 가까운 검사 끝에 중증도 우울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게 나는 말했다

이유가 없는데도 죽고 싶다고

상담과 약물치료가 시작되었다

신기하게도 내 안의 시커먼 동굴에 아주 작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다시 이동권 투쟁에 나섰고 전장연을 만났다

멀리서만 바라보며 동경하던 전장연의 활동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답게 경희답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숨통이 트이는 느낌과 함께 조용한 행복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세종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뿌리를 내렸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웅크려 있던 작은 경희는 천천히 몸을 폈다

나는 지금도 렉사프로 5mg을 먹고 잔다

예전에는 매주 상담을 받았고 지금은 두 달에 한 번 의사를 만난다

이 의사와의 인연도 어느덧 6 7년이 되었다

이제 내게 렉사프로는 약이라기보다 갑옷에 가깝다

현실의 상처와 불안 좌절의 화살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얇은 보호막

그리고 그 안에서 바닥에 웅크려 있던 작은 경희가 조용히 나를 안아준다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실수해도 된다

그것 때문에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산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마음의 감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닿고 싶어서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플 때도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검사받고 진단받고 치료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의 병은 낙인이 아니고 나약함의 증거도 아니다

숨길 필요도 없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내 삶이 살아질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마음속 동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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