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권리에도 설득이 필요할까?
비폭력대화법인 클라라대화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하지만 그런데 같은 단절의 언어가 아니라 그래 나도 그런 얘기 들었어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도 있더라 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한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욱하는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두지 않고 함께 현실을 이해해가는 파트너로 세우는 대화법이라는 점이 무척 새롭고 마음에 들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고 상대를 대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아무리 내가 옳아도 결국 설득이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고 나는 그 말에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는 외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고 전달되고 이해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출근길 지하철 투쟁 이야기도 나왔다ᆢ
나는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ᆢ 내가 출근길에 지하철을 탑니다라는 문장을 왜 우리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가?
시민들은 왜 욕부터 할까
왜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왜 거기서 무슨 이유로 그 시간에 그 공간에서 몸을 던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찾아보려 하지 않을까?
이 사회는 노동에는 공부하라 말하고
청년의 분노에는 이해하려 애쓰고 자신의 불편에는 언제나 구조를 찾으면서
유독 출근길 지하철 투쟁 앞에서만 중증장애인을 개인의 민폐로 축소한다!
이건 단순한 교통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 도시의 시민으로 인정받는가에 대한 질문이고 누가 이 사회의 시간표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존재의 문제다.
중증장애인은 왜 매번 설명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해야만 하는가?
설득이 필요하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그 설득은 항상 약자의 몫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이 사회 역시 배워야 하고
귀 기울이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