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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믈리에 Sep 12. 2022

골프도 등산도 떡볶이도 소풍이다

충북으로 놀러 가요 의림동떡볶이 먹구 와요


소풍

명사  

    1.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

    2.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일.




소풍은 당일도 즐겁지만 소풍이 계획되고 소풍날이 올 때까지의 시간도 특히 즐거웠다. 어디 가서 무얼 할지를 고민하고, 누구와 다닐 건지, 무슨 옷을 입을 건지 고민다. 소풍 전날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걸고 가방을 싸 둔다. 몇몇 친구들은 너무 설렌 나머지 밤을 꼬박 새우고 오기도 했다. 부모님이 예쁘게 준비해주신 도시락과 간식들도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구경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했다. 무엇보다 소풍이 좋은 건, 소풍을 가면 소풍이 전부라는 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우리는 오롯이 소풍을 즐겼다.


돌아와서도 소풍의 추억은 한 동안 화젯거리로 남았다. 누가 무얼 했다더라. 누구랑 누구가 같이 다녔다더라. 누가 늦게 일어나서 못 왔다더라. 소풍 에피소드는 몇 달이 갔다. 문득 생각나는 나의 에피소드는 머루주 강매 사건이다. 소풍지에서 만난 기념품점 아저씨들이 부모님 사다 드리면 좋아하신다고 머루주를 엄청나게 권했었다. 우리들은 반쯤 붙잡힌 채 일부는 기망당해서 일부는 마지못해 머루주를 각 두 병씩 구입했었다. 불행하게도, 누군가는 버스에 두고 내렸고, 누군가는 공원에서 마시다 탈이 났고, 누군가는 집에 잘 들고 갔지만 쓸데없는 짓 했다고 혼만 났다. 상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어린이들 속이고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골프 대유행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 창궐 때문인지 그에 발맞춘 마케팅 때문인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골프 인구가 크게 늘어난 모양이다. 전부터 주위 어른들은 앉아서 하는 것 중에 제일 재밌는 것은 마작이요 서서 하는 것 중에 제일 재밌는 것이 골프라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골프가 취미인 사람들은 종교만큼이나 전도에도 열정적이다. 함께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왜 그럴까? 왜 골프에 그렇게 열광할까? '골프장에 가서 18홀을 도는 당일치기 골프 라운딩'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골프도 결국 소풍이었다. 소풍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보통은 일단 멤버를 모으고 한 달 전쯤 날짜를 정한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을 준비한다. 연습장에서 샷을 가다듬기도 하고,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기도 하고, 골프 전후에 식사를 하러 갈 식당을 알아보기도 한다. 아, 스코어를 개선하고자 장비를 고르고 맞추기도 한다. 관심 없는 사람 눈에는 대충 다 똑같아 보이는 막대기들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샀다 파는 일들이 일어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갈아입을 옷을 싸서 담아놓고 잠을 청한다. 말똥말똥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도착한다. 산보하면서 게임을 즐기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든다. 골프를 치는 동안에는 골프뿐이다. 왜 공이 안 맞는지, 코스가 어떤지, 골프채가 어떤지... 관심은 골프뿐이고 도통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라운딩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여운은 쭉 이어진다. 칭찬도 하고 비난도 하고 혹자는 복수를 다짐하기도 한다.


골프만일까, 가족, 친구, 지인들과 함께 가는 등산도 마라톤도 다 어린 시절 소풍의 오마쥬다. 친구들과 만나서 나이가 들었더니 산이 좋아졌다든가 자연이 달리 보인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단지 나이 때문에 생긴 변화는 아닌 것 같다. 생각건대 골프가 좋아지고 등산이 좋아진 것은 어린 시절 좋아하던 그 소풍의 잔상이 거기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추억 속 인생의 떡볶이를 품고 사는 것처럼, 떡볶이에서 행복을 찾는 것처럼, 소풍은 어린 시절 우리에게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제시해주었고 평생 소풍을 그리워하고 기대하면서 살게 만들었다.


물론 소풍을 싫어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소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던 어떤 부분들이 그 친구들에게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실 어린 시절의 소풍은 상당 부분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로 짜여 있었다. 시기든 장소든 동반자든 옷이든 도시락이든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요소를 안고서 떠나야 했을 수 있고, 불만족스러운 요소가 일정 비중을 넘어섰다면 소풍을 싫어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렇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마도 당신은 이제 본인 인생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성인일 것이고 소풍 정도는 능히 통제할 수 있다. 혹시나 불행한 소풍을 기억하고 살았더라도 이제는 소풍을 새로 써서 행복한 추억으로 품을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소풍을 다시 쓸까? 지금 무작정 소풍을 떠나시라. 이미 행복한 소풍을 품은 당신도 같이 떠나보자. 내가 한 번 추천해보리다. 흠흠 말투를 바꿔서...


충북 제천-단양으로 소풍을 떠나세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봅시다. 이쁜 옷을 준비해봅시다. 새로 사기 뭐하면 다림질이라도 빡세게 해 볼까요. 청풍명월 제천의 청풍호반 끝내줍니다. 비봉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우아아아~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것 같달까. 단양은 또 어떤가요, 관동 팔경의 라이벌 단양 팔경에서 시라도 한 수 읊어가며 힐링하세요. 단양강 잔도길과 스카이워크도 명물입니다. 꼭 들려보세요. 특히 잔도길은 밝을 때는 밝은 대로 어두울 때는 어두운 대로 절경을 보여줍니다. 단양 하면 마늘이 유명한 거 학교 다닐 때 잘 외우셨죠? 집에 가는 길에는 마늘 사가세요. 짐이 부담스럽다면 마늘 고추장 추천합니다. 이게이게 요물이거든요.


혹시 도시락 싸오셨나요? 귀찮으면 편의점 도시락도 괜찮지만, 역시나 현지 맛집을 한 번 가셔야겠죠. 그러실까 봐 준비했습니다, 단양의 자랑 오구맵떡...이었는데 지금은 제천 의림동 떡볶이로 이름과 장소를 바꾸어 새로 열었습니다! 꽤 진지한 맛이 나는 감미로운 소스에 향긋한 깻잎, 그리고 얇은 라면사리가 떡을 충실하게 보필합니다요! 소풍의 완벽한 마무리는 역시나 즉석 떡볶이. 기억하세요, 볶음밥까지 드셔야 비로소 다 먹은 겁니다.


소풍을 떠납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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