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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믈리에 Oct 21. 2022

불륜, 이혼, 폭력 말고, 떡볶이

불편한 서초동에서, 광해즉석떡볶이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게 찾아온 한 가지 변화는, 지인들에게 크고 작은 법률 상담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 있을 사안인데 간단한 상담을 통해서 분쟁을 예방하거나 잘 해결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이럴 때는 지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넘어서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켰다는 보람까지도 더해진다. 물론 분쟁이 커져서 일이 되어야 나도 돈을 벌고 상대방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그 변호사도 돈을 벌고... 돈 벌어서 채용도 하고... 업계가 돌아가는 것이지만...


또 하나의 변화는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요청받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원인은 각종 SNS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변호사 광고글들 때문으로 보인다. 누구 글을 보니 사내 불륜이 어떻다던데, 누구 만화를 보니까 이혼 사건이 어떻다던데, 어떤 변호사 말이 데이트 폭력 관련해서 그렇게 막장이 많다던데... 지인들은 불륜, 이혼, 폭력으로 점철된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는지를 많이 물어다. 음, 내가 상속 상담을 하면 자꾸 당사자들이 화해하고, 이혼 상담을 하면 자꾸 둘째가 생기고 셋째가 생기고 그래서(...) 그런 자극적인 경험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인 데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보니,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주 업무분야가 아니라서 없는 것 같다고 적당히 넘어가곤 한다.




일단 의뢰인들의 개인사를 업무 사례라는 명목으로 가공해서 광고에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직업윤리에 맞는 행동인지에 대해 의문이다. 우선 당사자의 동의가 선행되었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만, 경험하지도 않은 사건을 적당히 만들어서 업무사례라고 주장하더라도 검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래도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업무 사례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수행한 사건의 판례 등과 그 광고 활용 동의서를 제출하게 해서, 직접 진행한 사건이며 의뢰인의 동의가 있었던 것을 심사하고, 그 심사를 통과한 사건만 광고로 활용할 수 있게-- 을 만든다거나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그런 글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업무사례 광고의 많은 경우가 일방 당사자의 비난 가능성 높은 언행을 이용해서 재미를 선사하는데--진위여부나 전후 사정, 상대방의 잘잘못은 없었는지 여부 등은 둘째 치고--자극성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당신의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광고는 만들지 마라

- 데이비드 오길비


인권을 침해당하고 고통받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며 권리 구제 방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업무 사례들이 하나의 가이드를 제공해서 그 누군가의 행복을 증대시켜줄 수 있다면 정말로 다행이다. 예컨대 어떤 부부 사이에 일방 또는 쌍방의 폭력성이 문제 된 사안이 발생했다. 이는 중대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고 조치도 필요하다. 그것이 문제라는 점을 잘 알려주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거나 하는 등의 업무 사례 광고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몇몇 업무사례 광고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제공하기보다는 재미에 방점을 두고 있다. 가끔은 이게 자극을 주어 갈등을 발굴하고 소송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사실 뭐 광고란 것의 목적이 그렇다. 부추겨서 사건을 수임하든, 자극적인 재미로 유명해져서 수임하든. 광고는 수익창출을 위한 도구이다.


한편, 위와 같은 업무사례가 광고가 아니라 순수하게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는 그런 소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기원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하기를, 등장인물이 고통받는 이야기, 비극이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라 보았다. 실제로 우리는 애가 타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더 잘 끌리고 쉽게 공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연민은 사람이 부당하게 대접받는 모습을 볼 때 생기고, 공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며 생긴다. 즉, 연민은 부당한 불행과 관련되고, 공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과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결혼생활에서 부당하게 대접받는 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낀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가정에 찾아온 배우자의 폭력과 외도, 갑자기 맞닥뜨리게 되는 혼외자의 존재 등은 현실적인 공포를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연민과 공포를 통해 글에 몰입하게 된다. 결국 수요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이 쉽게 관심을 가지는 작품이란 어느 정도 자극적인 것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먹고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재미를 위해서 그런 소재를 소비하는 것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다만 적어도 나는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가급적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더라~하는 이야기이다. 변호사는 귀찮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불편하거나 한 일들을 도와주는 직업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어찌 됐든 내가 업으로 하는 일이며 사명감 또한 가지고 있는 일이다. 일로 접하는 이야기는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단순한 흥밋거리로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소비하는 일은 공공연히든 사석에서든 불편한 일이고 가급적 하고 싶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직업윤리의 문제도 있고 고객에 대한 예의도 예의이거니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지 말아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 우리 스스로가 자극적인 재미로 포장된 고통과 불행에 서서히 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든 고통과 불행은 우리의 삶 어딘가에 반드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런 이야기들에서 배우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우리의 삶엔 겨울이 오기 마련이다. 지금 따뜻하더라도 항상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실제로 비극은 이를 접하는 이들에게 공포와 연민을 가르쳐, 우리로 하여금 감정을 절제하게 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 훈련이라고도 하지 않나. 그런 목적에서 글을 쓰고 글을 읽을 수 있다. 근데 정확히 선을 그어 표현하긴 어렵지만 우리는 사실 거기서 우리가 즐기려 하는지 배우려 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그 이야기가 즐기게끔 하는 것인지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지 않나?




나는 소소하고 미약하지만 2019년도부터 떡볶이의 날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떡믈리에 사이트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변화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떡볶이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원하는 지인들도 여전히 많지만 이제 떡볶이 이야기의 수요와 공급이 꽤나 솔찬하다.


'썸녀와 데이트를 하려고 하는데 어떤 떡볶이집이 좋을까요?'

'팀 회식을 하려는데 술 한 잔 곁들일 수 있는 좋은 떡볶이집이 있을까요?'

'밀키트를 사서 아이랑 같이 만들어보려는데 어떤 제품이 좋아요?'

이런 질문들을 받기도 하고,


'이 떡볶이집 내 인생 맛집인데 꼭 리뷰해주세요' 혹은 반대로,

'이 떡볶이집 내 인생 맛집인데 유명해지면 곤란하니까 절대 리뷰하지 마라' 라든가,

'이 떡볶이 브랜드는 프랜차이즈 본부에 문제가 있어 보이니 불매운동을 개시하자'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떡볶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겁다. 떡볶이 이야기는 보통 누군가의 행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추억들을 담고 있고 좋은 계획들에서 출발하며 좋은 마음을 이끌어내 준다. 물론 때로는 안타까운 이야기들도 있다. 나만의 맛집이 문을 닫았다든가 맛이 변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떡볶이를 즐기기 어려워지는 사례들까지. 그러나 우리는 항상 즐겁게 수다를 나누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통과 불행을 묻고 답하기보다는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떡볶이는 우리 안에 행복을 물들여주고, 그렇게 물든 행복은 삶의 어느 순간에든 긍정적인 기운을 선사하리라. 그래서 나는 떡볶이가 고맙다.


나는 당신의 기쁨과 행복이 궁금합니다.

떡볶이 이야기를 해주세요.

나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떡볶이 이야기를 해보려구요.

기쁨과 행복을 이야기합시다.

떡볶이를 이야기합시다.




사건사고를 품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전쟁의 도시 서초동.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걸고 찾아오는 이곳은, 2호선과 3호선이 가로지르는 전통의 교통 요지이다. 흑막끼리 밀담을 나눠야 할 것 같은 올드패션의 카페들과 어른들의 식사 모임을 겨냥한 진지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실내에서는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이 진지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 뭘 많이 해봤고, 누굴 잘 알고, 돈을 많이 벌거라는, 영락없는 사기꾼들이 어리숙한 사람들을 꼬시고 있는 광경도 꽤 자주 목격한다. 교통 요지답게 모임이 많은 반가운 만남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딱딱함과 불편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이야기지만 이곳의 '기운'이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눈물과 걱정과 갈등이 물든 곳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에 물든 내가 색안경을 쓰게 되어 그런 것일까.


그런 불편한 도시 안에 자리 잡은 유쾌한 떡볶이 맛집 광해즉석떡볶이. 첫인상이라면 뭐랄까 포차 느낌의 인테리어가 약간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분을 영 다운되게 만드는 이 도시의 기운을 상쇄해주려면 이 정도는 방방 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끄덕여본다. 투머치 한 인테리어와는 달리 떡볶이는 기본기에 충실한 편이고 자극적이지 않다. 과한 사리는 떡볶이에 해롭다는 주인장의 안내에서 떡볶이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불편함을 안고 서초동에 도달하였더라도 담백한 유쾌함을 선사해줄 떡볶이 맛집. 기쁨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광해즉석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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