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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믈리에 Sep 26. 2022

간축객서(諫逐客書)와 마복림(馬福林)

그야말로 원조, 원조마복림할머니떡볶이





"신이 듣자 하니, 

땅이 넓으면 생산되는 양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졸이 용감하다고 하였습니다

(臣聞地廣者粟多 國大者人衆 兵強則士勇)."


"태산은 한 줌의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是以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으며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왕은 여러 무리를 버리지 아니하므로, 

그의 덕행을 밝힐 수 있습니다

(王者不卻衆庶 故能明其德)."


-이사(李斯)의 간축객서(諫逐客書) 중에서 



간축객서는 진나라의 정치가 이사가 '축객령(외국의 인재들을 진나라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추방령)'을 반대하며 훗날 시황제가 되는 진나라의 왕 정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국적 등의 요인으로 차별하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해야 대업을 이룬다는 이 구절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논리와 아름다운 표현력으로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2000년대 급격한 식습관 변화가 찾아오면서 다양한 퓨전 떡볶이들이 등장했고 최근까지도 웰빙이나 고급화 시도가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고추장 베이스 소스에 쌀 또는 밀로 만든 떡을 조리하는 고전적인, 이제는 클래식이 된 고추장 떡볶이의 인기는 굳건하며 그 틀을 벗어나는 떡볶이들은 일시적인 유행은 겪을 수 있어도 아직 대중적인 지지를 얻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고전적인 떡볶이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다 보니 틀에서 벗어나는 떡볶이를 지나치게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고추장 떡볶이 소스에 치즈나 분유, 고수 등을 첨가하는 시도를 비난한다든가, 크림소스나 카레소스, 마라 소스 등을 이용한 떡볶이들을 배척한다든가, 쌀떡이나 밀떡이 아닌 제3의 재료로 만든 떡을 사용하는 떡볶이들은 거의 금기시하는 모습 등등...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이 고추장 떡볶이도 사실 처음에는 이단아였다. 궁중떡볶이라 일컫는 간장 베이스의 떡볶이만이 떡볶이라 불리던 1950년대, 마복림 여사님은 우연히 중국식 양념을 한 떡을 먹어보고 거기서 착안하여 오늘날의 고추장 떡볶이를 만들어 내셨다고 한다(짜장에 가래떡을 빠트렸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도 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즉석떡볶이의 라면사리 역시 처음부터 기획된 건 아니었다. 마복림 여사는 과거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기존에는 떡과 야채만을 끓여서 판매했는데, 어떤 여학생이 라면을 준비해와서 함께 끓여먹는 것을 보고서 메뉴에 추가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 마복림 여사님께서 대업을 이루고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고정관념에 빠져 식재료를 차별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매력적인 재료를 선택하셨기 때문이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으며, 

마복림 여사님도 여러 무리를 버리지 아니하므로, 

그의 대업을 밝힐 수 있었다.


인생의 떡볶이를 만나려는 우리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열린 마음의 자세로 다양한 시도를 체험하고 즐겨보자.

더 맛있는 떡볶이를 대접하기 위해, 우리의 행복을 매개하는 더 좋은 한 끼를 위해, 누군가가 수없이 고민하고 수차례 실패한 끝에 선보인 한 접시이다. 한 줌의 로제 소스도 작은 고수 줄기도 가리지 말고, 태산과 같은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여보자. 




그럼 여정을 떠나기 전에 우리의 디폴트 값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전설에는 그 시작이 있는 법이다. 성지순례랄까? 그게 너무 거창하다면 프리퀄(Prequel) 비슷한 거라 생각해도 좋겠다. 원조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는 떡볶이의 시작을 이야기하기에 완벽한 장소이다


전설 같지만, 그렇게 마복림 여사가 신당동의 명물인 신당동 고추장 떡볶이를 탄생시켰고, 이 떡볶이가 전국의 분식집으로 퍼져나가 고추장 베이스의 떡볶이가 떡볶이의 표준이 되었으며, 나아가 전 국민의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 꽤 확고한 통설이다(인천, 부산, 마산 등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견해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떡볶이의 기본재료와 희망하는 토핑을 냄비에 담아 제공하는 떡볶이, 이를 각 테이블에 있는 조리기구로 직접 가열하여 익힌 후 식사하며, 다양한 튀김 사리와 면사리를 곁들이기도 하고, 밥을 비비거나 볶아서 먹기도 하는 그 떡볶이를 우리는 즉석떡볶이, 또는 신당동 떡볶이라고 부른다. 다 아는 걸 왜 새삼스럽게 설명하냐고? 그 시작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RIP 마복림(19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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