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셰이모어24

인터뷰 : 나의 연극

by 이한

나의 연극 : 저항과 연극하는 이유



Q. 추구하는 연극에서 ‘저항’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출발은 ‘나’로부터의 저항입니다.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인간 충동, 혹은 이상을 부정하지 말고 좇아가라. 그럼에도 타자는 그것을 방해하고 종용하지요. 많은 이유들로 인해서요. 그것은 나에게 결핍으로 다가옵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들,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 우리는 자기 안에 내재된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고, 장애물에게 받은 인상을 반동의 힘으로 승화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즉, 배우는 실존적 상태가 되었을 때 존재합니다.


두 번째는 ‘너’로부터의 저항입니다. 여기에는 객체들이 많이 작용합니다. 비형상의 물질들, 돈, 야망, 보수적 관습, 나아가 관료적 사회에의 귀속.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또 하나의 기제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연극을 선택한 인간은 자유롭고 싶어서 이 세계에 온다 생각합니다. 기존의 자기 세계로부터 이탈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 세계는 쉽게 맛볼 수 없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현실과 허구의 사이에 과감히 자신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희랍극에서 말하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용기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문명화된 현재의 사회는 이 용기를 수많은 타자에게 잃고 얻습니다. 그래서 저항은 나와 너의 교집합이며 상호작용을 의미합니다.




스크린샷 2024-10-02 오후 8.13.41.png


Q.스스로를 백치로 여기며 연극에 대한 걸음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자기 선언입니다. 누가 스스로 백치라 말하겠습니까? 그 말은 타인에 의해서 정의된 것이죠. 우리는 다른 시선에 의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갑니다. 특히, 연극 배우는 여전히 ‘딴따라’ ‘광대’로 치부됩니다. 동시에 배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기도 합니다. 희랍시대에는 정치가나 당시 엘리트 계급인 군인, 혹인 시민권을 가진 부르주아들만 누리는 특권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배우가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도 갖습니다. 나와 사회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 부조리를 먼저 바라보고 행동하는 존재, 저에게 배우는 그런 놀라움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연극의 중심이 배우이며, 그들은 이타적이고 수직과 수평을 오가는 힘을 지녔다 믿습니다. 고로, 세상의 중심에 선 배우이며, 연극하는 인간입니다.


지역과 연극 :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하고 있는 행함에 대하여



Q. 연출님에게 ‘대구’는 어떤 곳인가요?


저희 집단에 기회를 준 공간입니다. 2012년 창단한 후부터 많은 소외와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지킨 이유는 우리의 행위를 지지하고 건강한 비판을 해준 선후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5평 남짓 되는 연습실에 라면을 들고 찾아와 준 선배님부터 창단공연을 무료로 대관해 주신 대표님, 관객이 없어 휴관할 뻔했던 순간마다 공연을 보며 술 한 잔 기울여 준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흩어져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이곳은 굉장한 하드웨어를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울보다 지원정책이 많다 볼 수 있습니다. 꿋꿋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축제와 지원사업이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실험실 <연극실험실 노아>는 약 40개의 극단이 밀집된 대명공연거리에 있습니다. 이 거리의 하드웨어가 연극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런 장점들이 대구를 공연문화도시로 자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스크린샷 2024-10-02 오후 8.14.40.png


Q.지역에서 연극을 하겠다고 다짐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선배님의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집단운영과 작업의 한계를 맞던 즈음, 윤대성희곡상을 수상한 희곡을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초연을 하고 서울과 밀양에서 발표해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마지막 기회임을 자각하고 동료들과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서울에서 십여 명의 제작진이 서울에서 체류할 재정이 없었습니다. 절박한 저희들의 대구초연을 보신 선배님이 체류비에 쓰라고 백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통화를 끊고 차 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의 가능성은 결국 사람이었구나.”라고 되뇌었습니다. 그 순간이 지금을 있게 했습니다.




연출과 연극 : 연출에 대하여



Q.연극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을까요?


매일입니다. 대표로서 집단을 이끌 당시는 올해는 어떻게 버틸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아왔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불안이 극장까지 이어져 뜨거운 에너지로 승화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얻은 불안과 긴장이 우리의 작품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저를 흥분시킵니다. 대부분이 생존과의 경쟁이지만, 보람은 연습과 공연에서 얻습니다. 한국에서 연극을 하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Q.연출님께 ‘연출’은 무엇인가요?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지금 사회는 개인주의가 지배적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역할만 충실하면 보상해 주는 식이지요. 하지만 예술은 타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언어에서부터 출발해 확장되는 과정에 매력을 느낍니다. 함께 분석하고 생각을 공유해 표현에 이르는 시간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선물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극장에서 매듭을 짓는 셈인데, 결국 목적은 관찰자로서 관객과 관계를 맺고 극장 밖을 나설 때에 또 하나의 참여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것은 이타적 의식을 지향합니다. “아직 살만 하는구나.” 하는 의식 말입니다. 그러므로 연출의 역할은 먼저 느끼고 함께 나누는 통로를 만드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스크린샷 2024-10-02 오후 8.15.13.png


Q. 외젠 이오네스코, 카프카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고유의 느낌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작품을 새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장과 설득이 아닌 ‘제시의 미학’을 믿습니다. 이 말은 외젠 이오네스코가 주창해 유명해졌는데요. 이제 극장은 영웅이 이끄는 드라마가 아닌 평범한 시민도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고전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는 냉혹해서 금방 사라지잖아요. 하지만 비정의 뒤안길을 극복한 글들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재현이 아닌 동시대의 시의를 지닌 드라마를 선호합니다. “시간은 흘러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고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입니다.


Q. 연출함에 있어 영감을 준 단 한 권의 책을 꼽는다면, 어떤 책을 꼽으시나요?


예지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을 향하여'입니다. 한국에서는 '가난한 연극'으로 출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어로만 이해했던 연극의 개념을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정립한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형식과 내용, 밖과 안의 일치를 말합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점은 인간(배우와 관객)으로의 회귀에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할 수 있는데, 저에게는 가까이에 있던 것을 잊고 살았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연극은 그때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국 연극을 비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