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독일에서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8년 동안 극단 운영과 공연제작에 빠져 살다 방전이 되어 잠깐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겸사 공부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동경하던 독일 연극도 볼 수 있으니, 스스로 안식년이라 부르며 지구 반대편으로 떠났다.
처음 만난 독일의 극장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독일 연극 자체가 현대유럽연극을 이끌었던 중심이었고, 몇 세기를 걸쳐 양산해 낸 철학과 사상이 미학과 방법론으로 출현하니, 관객으로선 극장을 가는 것이 설렘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있었던 베를린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극장들이 있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아내이자, 배우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세운 극장, 베를리너 앙상블(Berliner Ensemble),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샤우뷔네 극장(Schaubühne Theater),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 그리고 사회정치극의 역사를 대표하는 민중 극장(Volksbühne)이 있다. 이들 극장이 재미있는 이유는 각 극장이 추구하는 색깔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베를린의 건축 양식은 역사성을 반영한 다양한 건물이 있다.
브레히트의 베를리너 앙상블은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국민들의 민주적 의식 계몽과 선택을 위한 서사극을 발표했고, 도이체스 씨어터는 1883년 개관 이후, 독일의 전통성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14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공연했던 작품이 관객을 맞고 있다. 또한, 이들의 색깔과 정반대의 작품을 하는 극장이 샤우뷔네 극장이다. 유럽현대연극의 젊은 거장으로 평가받는 오스터마이어의 극장 경영론에 따라, 독일의 젊은 극작가와 연출가들이 실험의 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극장의 목표가 뚜렷한 곳에서 나는 깨달았다.극장이 곧 연극이라는 메시지였다.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독일이라는 타지에서 발견한 극장의 공통점은 관객이 다양한 공연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100년 전 발표되었던 리얼리즘부터, AI와 인간의 관계와 가능성을 토론하는 다큐멘터리극까지, 독일의 극장은 보수와 진보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시민은 관객으로서 자신의 기호와 일치하는 공연을 결정하고, 극장을 나오면 작품이 준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공감한다. 물론, 극장 문화에 대한 문화의식이 높은 시민도 대단하지만, 극장이 담론의 장으로 이용되어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주체적인 시민의식을 문화화한다는 점이 인상 깊은 지점이다.
베를린 광장(Platz)이 있는 곳엔 항상 공연이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DAC
우리의 경우를 보자. 한국 역사의 특수성 상, 극장의 건축구조 자체가 다용성 구조이기에 특정 장르가 특화된 공연을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극장은 기획으로 극장경영의 기준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을 보러 극장에 간다. 작품을 선별, 선정하는 극장이 제작, 기획을 통해 색깔을 만든다. 그 색깔은 극장의 의도가 되고, 관객은 그 의도를 수용하거나, 흘려보낼 수 있다. 이 말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누구를 위해 공연하는가의 판단은 관객이 결정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이런 극장에 관객이 되어 방문하고 싶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움을 얻게 된다.
대구시의 공립극장은 대구문화예술회관이다. 2024년을 기점으로 DAC라는 브랜드로 탄생해, 프로그램의 리뉴얼을 발표했다. 과감한 변화와 시도로 대구시민에 사랑받는 극장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연말 발표한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선,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맞춘 기획과 제작능력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적극적인 기획공연 유치로 다양한 색깔의 공연을 시민에 제공해야 한다.
또한, 극장의 의도는 결국 행위자인 예술가의 작품에 있다. 시민을 위한 양질의 공연을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대구시 예술단은 전문공립예술단체로서, 창작 능력 신장과 창의적인 프로그램 제작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민을 위해 외부에서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본질은 작품에 있다. 대구시가 DAC에 진정한 변화를 바란다면, 상주예술단체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시민이 예술과 공존하는 순간이 출발할 때, 곧 창작자는 고통을 직면한다. 관객은 늘 새로운 순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함께 한다. 공립극장이 지역 시민이 오고 싶게 만들고, 관객은 예술의 향취를 즐기는 순간, 창작자는 삶의 보람을 관객으로부터 돌려받는다. 예술가는 개인이지만, 극장은 그 개인의 능력을 확장시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생각을 환원할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창조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민이 곧 극장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독일에서 체험한 극장은 분명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구축했을 것이다. 대구의 극장이 비교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특성에 맞는 극장을 시민에 전달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며, 선택과 집중을 할 때 극장문은 관객이 먼저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