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교보문고에 가게 되었다. 갑작스럽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일을 보거나 쉬었는데, 그날은 왠지 바람도 쐬고 싶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싶었나 보다. 옷도 대충 걸쳐 입고, 적당한 무기력함과 함께 외출했다. 20년 만이다.
교보문고 3층엔 문화예술 코너가 있는데, 구석에 보면 유동인구가 비교적 적은 조그마한 공간이 있다. 나는 그곳을 ‘아지트’라 불렀다. 나만의 아지트에 엉덩이를 붙여 앉으면 바닥이 편해 불편하지 않고 조용한 장점이 있었다. 그때 파우스트를 처음 만났는데, 1막 1장에 이런 말이 로 극이 시작한다. “철학, 법학, 의학 그리고 신학까지 인간이 만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살만큼 살은 80대 노파가 알고 싶다고 신께 어린양 피우는 것 같아, 차분했던 교보문고 3층에 웃음으로 찬물을 끼얹었던 기억이 있다.
대구 시내에 서점이라 하면 두 곳이 대표적이었다. 중앙로에는 교보문고가 있고, 반월당에는 영풍문고가 있었다. 또 시내 서점은 시민들에 딱히 갈 곳이 없거나, 사람을 기다릴 공간이 필요할 때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접할 수 있고, 여러 색깔의 읽을 꺼리도 있으니, 시간 보내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나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읽었다. 이왕 백수가 될 거면 프로페셔널해보자는 저돌적 신념 덕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20대 초, 직업도, 능력도 없던 나는 하루가 이렇게도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에 공허함을 느꼈다. 그런데 마치 카프카 속 인물 K처럼, ‘어떤 우연에 의한 갑작스러움’ 에 의해 서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다. 인근 고교 야구장 잔디에 누워 야구를 보다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 그러다 갑자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단편이 탈고되고, 갑자기 등단을 하게 된 일화. 나는 그들처럼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같은 의상과 일정, 반복이 재현되는 일상, 그 무의미한 시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무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시간을 잊기 위해 읽고, 현실을 잊기 위해 읽었다. 문학 코너에 들어가서 제목이 멋있으면 그 책을 읽고,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그 책을 폈다. 다 읽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매장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영업시간 종료 예고방송이 나오고, 그래도 안 가면 직원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경기 중인 내 어깨를 조용히 두드린다. 그럼 심판에 의한 강제 종료가 된다.
한 가지를 하면 사람이 기술이 생긴다고 했나. 어제와 다름없이 읽는데,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이해가 되지 않아 포기했던 내가, 아는 단어가 늘기 시작했다. 극 속의 인물을 동정하고, 상황과 사건에 분노하거나, 현대 사회 구조의 부조리에 현실적 대안이 어떤 게 있을지 관련 서적과 작가를 찾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키워드를 정하고, 집중하게 되었고, 저자의 생각을 수용하기만 했던 내가, 반대 성향을 띤 작가의 저서를 읽었고, 그 작가의 다른 면을 주장하는 철학가의 저서를 읽고 있었다. 원하는 서적이 없으면, 복학생 후배를 찾아가 학생증을 빌려 도서관을 뒤졌고, 찾던 책을 만나면 너 어디 있었냐는 말을 대놓고 뱉었다. 이제는 글이 아닌 그림이나 음악도 또 하나의 글처럼 느꼈고, 글 너머의 글들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갑자기 일어났고, 그 갑자기는 ‘자연스럽게’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20년 만에 찾은 서점은 낯선 느낌을 주었다. 즐겨 읽던 책들은 다른 코너로 이동했고, 당시 인기 있던 책들은 코너 구석이다 못해 어느 곳에도 볼 수 없었다. 요즘은 경제와 투자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맨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적어도 문학서적 한 두 권만큼은 맨 위에 있으면 했는데…. 왠지 나만의 낭만이 소실된 것 같은 기분이 왜일까.
동시에 거리에 서점은 볼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교보문고가 있기 전엔 제일 서적이 동성로 대표 서점으로 많은 독자와 시민이 애용하는 공간이었던 적도 있었다. 2006년 폐점한 후에도 교보와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이 독자들의 읽을 권리와 공간을 지원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종이보다 핸드폰을, 잉크보다 픽셀을 더 찾는 시대가 되었다. 아날로그가 점점 더 우리로부터 멀어진다는 생각에 소심한 한숨을 뱉었다.
사람이 많다는 건 어느 곳이든 희망이 있다는 방증이다. 서점은 사람을 모이게 했고, 그곳에서 또 하나의 인간과 세계를 만나게 해 주었다. 계획하거나, 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서만큼은 나를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독서가 그립고, 행복했다. 새로운 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인지, 이미 있는 것은 낡은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누군가, 나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가 이 공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렇게 서점에서 머물렀기에, 비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