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대구연극제가 막을 내렸다. 3월 22일부터 시작된 연극제는 젊은 연극인들이 중심이 된 “더파란 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제 본선을 위한 지역 예선인 “대구 연극제” 로 구성되어 약 보름 간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린이회관의 꾀꼬리극장이 시설을 개보수해 대구어린이세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여는 첫 기획이기도 하다. 제1회 대구연극제가 개최된 극장이 이 곳에서 약 40년 만에 찾아와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올해 대구연극제는 8편의 비회원 단체와 3편의 정회원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축제의 장을 열었다. 작년에 비해 본선 참여작 수가 줄긴 했지만, 더파란 연극제의 출품 수를 합치면 여전히 대구 연극인이 얼마나 매년 이 달을 기다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30세대가 주축으로 구성된 젊은 연극인의 창작의지는 올해 세 번째 막을 여는 더파란 연극제로, 정기화된 창작과 실험, 연대를 도모할 수 있어 현장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사실, 대구 연극의 현상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수도권에 유입되는 2030세대*MZ세대라 할 수 있는 의 차세대전문인력은 지역에 남아 창작활동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좀 더 넓은 무대에서 자기 꿈을 실현하려는 목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혜화동*성균관대학교 앞 대학로 거리 일대을 중심으로 경기 수도권의 공연예술벨트는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며,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등용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능을 지역에서 대체가능한 대안을 만든 것이 더파란 연극제라 할 수 있다. 다행히, 대구에 공연예술 관련학과가 꾸준히 인력을 배출하고 있어, 청년 예술가들이 잔류할 기회를 여러 채널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창작기회를 적극적으로 배양, 생산해야 지역 씬이 풍성해지고, 나아가 생태계가 활발해 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더파란 연극제는 대구연극협회가 대구연극제만 집중하는데도 어려운 실정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투자해 얻은 유익한 결실이라 보는 것이 젊은 연극인들의 여론이다.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이 변화가 되었다.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일대에 연극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극장과 연습실이 생겼고, 공연예술인 중심의 컨텐츠가 늘어나 ‘대명공연거리’로 특성화사업이 착수되었다. 기존의 기성극단이 주도해 대명공연예술단체연합회가 출범하고, 지자체 지원으로 대명공연예술센터가 건립되면서 대구의 연극인이 이곳에 모이면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게 되었다. 선배 연극인이 긴 호흡을 두고 추진한 덕에 대명공연거리는 대구의 독자적인 창작벨트가 되었고, 10년이 지나 더파란 연극제로 귀결되었다. 젊은 연극인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닌, 꾸준한 실행과 기획력, 자생의 의지가 모인 결과라 볼 수 있다.
지금의 대구연극제는 경연 부문 출품 수보다 젊은 연극인들의 출품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시기다. 지역의 어느 곳을 봐도 이러한 현상에 환영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희귀한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차세대 창작자들이 마음껏 자기 뜻을 펼치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을 계획과 대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연만이 우선되는 것이 옳은가? 개인을 집중하는 지원이 옳은가? 지금부터 고민을 시작할 문제다. 필자가 보기에 지역의 젊은 창작자가 공연제작지원만 수혜를 받는 시기는 지난 듯하다. 매 년 3월이 되면 가장 많은 공연이 몰리는 것 또한 이러한 현상을 방증한다.
우리는 3월의 공연을 위한 준비가 아닌, 다음 3월을 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작품이 활기를 띄기 위해선, 창작자를 지원해야 하고, 창작자가 발전하기 위해선 동시대 창작자가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 지금의 분위기를 확장하기 위해 좀 더 창의적 기획을 모색하고, 새로운 인력과 기회를 마련해 고착될 수 있는 매너리즘으로부터 스스로 환기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자신의 작품을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진다면, 타인의 작품과 공생할 수 있고, 다시 자기 개발로 돌아와 발전 된 방법론을 생산할 수 있다.
한국 연극의 메카인 서울 경기 수도권의 성공비결은 단순이 지역의 특수성이 반영 된 결과가 아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동료 연극인이 다른 생각과 담론이 자기 방식으로 다듬은 결과들의 충돌에서 발생한 시너지다. 한 세계의 발전은 그들의 방식으로 얻은 현재이자, 미래인 셈이다. 대구 연극계도 이런 기조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소중한 인적 자산이 개인의 창작 권리를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 동시대의 시의를 각자의 관점으로 발견할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
한때, 연기론의 바람이 강하게 불던 시절이 있었다. 배우의 연기는 고유의 양식이 특화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메소드 바람. 심지어 그것을 맹신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속도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흘러갔고, 그 시대에 부합하는 연기론이 재생산되었다. 그렇다면, 2024년의 우리는 왜 연기를 하는 걸까? 연기라는 양식에서 기술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지역의 젊은 연극인은 누군가가 만든 시스템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불완전한 형태를 창작한다. 나는 그것이 기술과 형식을 초월한 연극의 본질이라 믿는다. 이미 있는 것의 재현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의지가 곧 자기 연극의 출현이며, 자기 연기의 발현이다. 기성세대에 반하는 공연문법과 스타일이 비주류 연극으로 비추어 질지라도, 자기 신념과 진정성이 끊임없는 고찰과 비판을 반복한다면, 젊은 연극인은 또 하나의 시대정신을 잉태할 것이다. 적어도 오늘의 대구연극은 그 정신을 응원하고 있음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