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에 두고 온 것들

그리고 10년 만에 조우한 일출

by 강희준

2024년 나는 대청봉에 세 번 올랐다.
5월의 신록 한 번, 10월의 단풍 두 번. 이미 두 편의 글을 세상에 내보냈으니, 또 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은 같아도, 오르는 사람의 마음은 번번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오르고 또 쓰는 것이 아닐까.


가을 단풍은 늘 정상에서 먼저 든다. 높은 곳이 먼저 식고, 먼저 붉어진다. 이번에도 그 이치를 확인하듯 봉정암 능선은 가장 깊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붉음은 서두르지 않고, 위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로 번져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숨을 고르며 걸었다.


백담사에서 오를 때는 사진을 많이 찍었다. 계곡의 물빛, 바위에 얹힌 잎사귀, 능선 위로 번지는 노을빛까지. 셔터 소리는 마치 내 걸음의 박자처럼 이어졌다. 풍경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한계령 쪽 하산길은 생각보다 담백했다. 장쾌한 계곡도, 사람들의 탄성도 드물었다. 찍을 만한 장면이 많지 않았다. 카메라는 점점 가벼워졌고, 장갑은 자주 벗지 않아도 됐다. 사진이 줄어들수록 생각은 늘어났다.


봉정암에서 묵은 밤, 나는 잠들기 전 작은 기도를 했다. 내일 새벽, 부디 맑게 하여 일출을 보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내려가면 좋은 글 한 편을 쓰게 해 달라고. 칠순의 바람이란 이토록 소박하다. 더 빨리 걷게 해 달라는 소원은 이제 없다. 그 수필을 산행 2년 뒤에 쓰고 있노라니, 세세한 기억은 또 가물가물.


새벽어둠을 밀고 정상으로 향했다. 예전 같았으면 앞선 이를 보며 속도를 올렸을 것이다. 십 년 전엔 산을 오르며 남을 추월하는 기쁨들이 소소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모두가 나를 추월한다. 나는 그들의 등을 보며 천천히 걷는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전혀 없다. 이제는 내 숨에 맞추어 걷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정상에도 거의 마지막으로 닿았는데 동해가 어둠을 벗고 있었다. 이윽고 해가 수평선을 밀고 올라왔다. 빛은 능선을 적시며 붉게 번져갔다. 그 순간,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내였다.


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기보다 깊다. 오래 함께하지 못했기에, 그 빈자리는 더 넓게 남아 있다. 어머니가 내 삶의 시작이라면, 아내는 그 이후의 세월을 채워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계산해 본다. 어머니가 삼분의 일이라면, 아내는 삼분의 이를 차지한다고.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


십 년 전 일출은 나의 체력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아직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던 시간이었다. 이번 일출은 달랐다. 나는 해를 보며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나를 기다려주고, 돌아갈 집을 지켜주고, 철없는 산행을 묵묵히 응원해 준 사람에게.


하산길에서 나는 욕심을 접었다. 더 화려한 길을 택할 수도 있었겠으나, 몸은 이미 솔직해졌다. 한계령 쪽으로 내려왔다. 찍을 풍경이 적은 길이었지만, 대신 오래 생각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젊은 날에는 사진이 많았고, 지금은 사유가 많다. 무엇이 더 값지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나는 후자를 더 오래 붙들고 싶다.


산을 세 번 오르며 나는 배웠다. 단풍은 위에서부터 들고, 빛은 높은 곳에서 먼저 번진다. 그러나 오래 남는 것은 색이 아니라 관계다.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지만, 함께한 세월은 그렇지 않다.


이번 산행에서 나는 많은 장면을 찍었으나, 가장 또렷한 장면은 사진 밖에 있다. 동해 위로 떠오르던 해, 그리고 그 순간 마음속에 떠오른 한 사람. 정상에서 내려오며 나는 알았다.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풍경이 아니라, 결국 돌아갈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사진은 정상에 두고 왔다. 그러나 마음은 한 사람에게로, 더 또렷이 내려왔다.

https://youtu.be/guWOj3LlCYA


작가의 이전글고교 얄개 ⑦ [편지] 3학년이라던 숙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