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을 열자마자 녀석들의 짓궂은 야유가 귓전을 때렸다. "야, 쭌! '옥짜'는 찾았냐? 이름이 옥자면 어떠냐, 얼굴만 예쁘면 됐지! 안 그래?" 70년대 그 시절, 이름 끝에 '자'가 들어가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다. 영자, 순자, 숙자, 그리고 옥자까지. 정작 본인들은 여자친구 하나 없는 주제에 녀석들은 제멋대로 '옥자'라 단정 지으며 낄낄거렸다.
당시 거리 전파사 스피커에서는 나훈아의 '애정이 싹트는 시절'이 거친 음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사처럼 내 마음에도 무지개 같은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녀석들의 놀림은 그 무지개에 흙탕물을 끼얹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지지 않았다.
내 책가방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 보물처럼 간직된 쪽지, 넥타이 모양으로 정갈하게 접힌 그 종이 속 필체는 흔한 '옥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토록 예쁜 글씨를 쓰는 주인공이라면 이름은 고상할 것이라 확신했으니까. 아니 꼭 그럴 것만 같았다.
나는 강의실 이곳저곳을 모두 뒤지고 다녔다. 쉬는 시간이면 하이에나처럼 복도를 서성이다가, 여학생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책상 위 노트들을 살폈다. 영어 실력은 중학교 수준이었을지언정, 쪽지 속 필기체를 찾아내는 눈썰미만큼은 국가대표급이었다.
그 뜨거운 여름날, 나는 나만의 보물을 찾아 헤매는 고독한 탐험가였다. 범죄 수사관이라도 된 듯 긴장된 마음으로 살피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 권의 노트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민. 자. 옥.'
옥자도, 숙자도 아닌 '자옥'이었다.
침략꾼 일본 놈들을 향해
"내가 국모다"라고 나서서 전사하신 명성황후의 후예다.
이름마저 보랏빛 꽃처럼 예쁜 그녀를 확인하는 순간, 내 심장은 수구 골키퍼로 결승전을 치를 때보다 더 세차게 방망이질 쳤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책상으로 돌아온 그녀, 정말 예뻤다.
한 달이나 늦어버린 제헌절 약속, 내 무심함 때문에 바람맞았을 그녀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정중히 사과했다. 그녀는 자기가 차인 줄 알았다며 얼굴이 빠알개졌고, 내 목소리는 미안함에 떨고 있었다.
"미안해, 자옥! 쪽지를 한 달이나 늦게 봤어."
사과하는 와중에도 전파사에서는 서영춘 씨의 "뿝빠라 밥빠 뿝빠빠" 하는 익살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진지한 사과 중에 웃음이 터지면 산통이 깨질까 봐. 그놈의 뿝빠빠 뿝빠빠가 자꾸 생각나 죽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