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민망②] 내 팬티를 벗긴 자, 그는 무죄인가

by 강희준

화장실 옆 칸에 아는 사람이 들었을 때,

작은 인기척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곳엔 신문을 들고 느긋하게 갈 때도 있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급히 갈 때도 있지요.

표정뿐만 아니라 자세 전체가 일그러졌던 날의 얘깁니다.

배변의 고통을 참으며 화장실을 향해 복도를 걸었습니다.


계속 걷기 힘들 땐 벽보를 보는 척 돌아서서 쉬거나

무릎을 꼬고 까치발을 들며 내공을 쌓기도 했습니다.

오가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눌 때,

이를 악문 미소 때문에, 위기 상황을 들킨 때도 있을 겁니다.

가까스로 도착한 화장실 문 앞에서

점잔을 빼며 똑똑 노크했는데

안에서 무슨 대꾸 소리가 났습니다.


"누구세요?"


아니, 노크로 답하면 되지 이 물음이 상황에 맞습니까?

이 웃기는 질문에 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게 웃음뿐입니까?

입술에서 풋-하고 웃음이 터졌고, 그 소리는 뒤로도 샜습니다.


옆 칸으로 들어선 나는 괴로웠습니다.

물을 걸 물어야지 쓸데없는 대꾸를 해서 나를 웃긴,

그 희한한 질문자는 무죄인가?


할 수 없이 나는 팬티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점점 시원해지는 노팬티의 촉감이 새롭고 좋았습니다.


막연히 짐작했던 생각보다 너무 시원하다 못해 선선한 느낌이랄까.

얇은 면 한 장의 보온력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걸리적거림과 허전함의 절묘한 만남,

그 경험을 사무실에서 느껴 본 사람에게 묻습니다.


노팬티의 촉감을 알게 해 준 화장실의 그 짱구에게

“외려 고마운 마음을 품어도 좋겠습니까?”

할 수 없이 알게 된 촉감, 이젠 가끔 즐기기도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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