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서툰 연습들
누구나 한 번쯤은 거치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발견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2021년 봄, 4학번 위 선배의 추천으로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학과 교수님이 임원으로 계시고, 과 선배가 대표로 있는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면접 당시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섰던 그 공간에서, 나는 만 22살의 나이로 B2B 세일즈 인턴이라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10인 미만의 스타트업에서 보낸 6개월.
코로나로 인해 대면 미팅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메일과 전화로 채워나갔다.
각 대학의 니즈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일이었다.
어떤 멘토와 어떤 강의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방향이 달라졌기에, 매번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다 첫 계약을 성사시킨 날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계약이었지만, 내겐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퇴근 후 (전)남자친구에게 전화했다.
첫 계약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오늘 드디어 첫 계약을 따냈어!"
그때는 몰랐다.
이 기쁨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상처가 되어 돌아올 줄은.
니가 00(과동기)이처럼 대기업을 간 것도 아니고,
그딴 데서 콜센터하면서 대단한 일 하는 것마냥 난리치는 거 웃기다.
다툼 중에 그가 내뱉은 말이었다.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의미 있게 여겼던 순간이, 그의 눈에는 그저 하찮은 일에 불과했던 걸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들은 그 한마디가, 서서히 번져가는 잉크처럼 나의 자부심을 지워갔다.
그의 말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모든 열정과 노력을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만드는 칼날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작은 일에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내가 우스워 보였을까.
후에 그는 사과했다. 군대를 앞둔 휴학생이었던 자신의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같은 나이였지만 나는 이미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그는 아직 대학교 2학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과는 이미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남긴 뒤였다.
그 후로 나는 회사에서의 작은 성취들을 더 이상 그와 나누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누구와도 온전히 나누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기쁨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시간이 흘러 이제야 알게 됐다.
우리는 꼭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만 살아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함부로 폄하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흔들린다.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사람도, 가장 가까운 이의 말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다.
그때의 나처럼.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처음 맡은 일에 설레던 마음도, 작은 성과에 기뻐하던 순간도, 그리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도.
일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생계의 수단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자아실현의 길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어떤 방식도 틀리지 않았다는 거다.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