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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매뉴얼이 아니다

이직 후 깨달은 ‘사고의 매뉴얼화’

by 한주

“한나, 그래서 어디로 이직할 거예요?”

“저는.. 이미 ‘시스템’이 잘 잡혀 있거나(대기업st) ,

아니면 그 중요성을 알고 같이 만들어갈 생각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어요!"


사실 이전 회사에서는 철저히 ‘사람’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작은 조직이다 보니, 한 사람이 주는 임팩트가 너무나 컸거든요.

“될 만한 사람”을 뽑아, 정말 그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식이었습니다.

그 덕에 장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분명 느껴진 한계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리소스 부족이라든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닐 경우엔 제대로 케어가 안 되는 문제 등…)


이런 경험을 통해 ‘아, 언젠가는 시스템이라는 게 필요하구나’

막연하게 깨닫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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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직을 준비할 때마다,

저는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다”고 떠들고 다녔어요.

하지만, 그때 제가 말하는 ‘시스템’이 도대체 뭔지 스스로도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다는 걸

이직 후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저희는 다 문서화돼 있어요.”

이런 대답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새 직장에서 지내보니

내가 생각한 ‘시스템’은 단순한 매뉴얼 뭉치가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우선, 시스템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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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맥도날드식 시스템.

전 세계 어느 매장에서나 똑같은 맛과 품질의 빅맥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뉴얼을 극도로 정교하게 다듬은 구조죠. 누가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든 셈입니다.


다른 하나는 팔란티어(Palantir)식 시스템.

단순히 데이터를 예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분석가들이 ‘어떤 가설로 시작해, 어떻게 데이터를 검증해, 왜 이런 결론을 냈는지’까지 그 사고 과정을 통째로 소프트웨어에 담아놓은 거죠.

이렇게 해두면, 새로 들어온 사람도 금세 선배들의 판단 맥락을 따라갈 수 있어요.


제가 진짜로 찾던 건 이 두 번째 유형이었어요.

S급 인재들의 암묵지를 조직 전체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맥도날드처럼 모든 과정을 철저히 매뉴얼화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가들의 판단이라는 건, 언제나 맥락과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주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가?

지금은 이 세 가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1. ‘판단의 기준’이 되는 본질을 정의하고, 모두가 공유하기

광고 예시를 들어보면,“사용자의 결핍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같은통찰이 본질일 수 있어요.

이런 본질이 조직 구석구석까지 전파돼 있어야,각자 다른 방법을 택해도 결국 같은 골에 도달할 수 있죠.


2. 사고 과정을 구조화하기

팔란티어처럼, 분석가들의 생각하는 흐름을시스템이나 프레임워크로 정리하여 구조화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질문들을 던지며,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를모두가 참고할 수 있게 해두면,누가 일하든 최소한의 일관성은 확보할 수 있죠.


3. 실패와 성공 패턴을 조직적으로 쌓아가기

“왜 이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꾸준히 기록해두면,비슷한 상황에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누적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결국 ‘집단 지성’으로 거듭나며 조직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거에요.


다만, 이걸 시스템화한다고 해서 꼭 맥도날드처럼 모든 과정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커요.

현실적으로도 힘들고, 사람은 기계처럼 똑같이 찍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제가 말하는 ‘시스템’은, 전문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탁월한 결론에 이르는지를조직 전체가 함께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뜻해요.


이를 위해서는,

“왜 우리에게 이 구조가 필요한지”를 다 같이 공감하는 게 우선이고,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기보다는

작은 팀이나 프로젝트 단위로 시도해보면서 조금씩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 좋겠죠.


결국, 전 회사에서 초개인화에만 초점을 맞추던 제가 이직 후 한 달 만에 깨달은 건,

‘시스템’을 잘 깔아두면, 사람도 오히려 더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시스템 위에선, 누군가 혼자만 빛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함께 빛날 수 있거든요.


그게 바로,

제가 앞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진짜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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