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속에서 깊은 의미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하루는 아침 이슬처럼 맑고, 저녁노을처럼 고요했다. 나는 그녀를 두고 '단단한 사람'이라 부르고 싶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견고하다.
박규리 시인의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 시집이다.
그녀는 공허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시의 언어들을 뽑아 올리는데 넓은 들판의 바람처럼 자유롭다.
공허함, 그 안에서 나를 찾고, 나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꼿꼿하다. 언제나 바로 서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서도 깊은 깨달음이 느껴진다. 순환과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읽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그녀에게 시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다.
두 가지가 공존한다.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바위처럼 단단하면서도 공허한 공간을 품고 있다.
》사무친 길《
박규리
나보다 더 지쳐
찬 바닥에 모로 누운
몸과 마음아
이 밤만은 너희들을
살며시 뉘어놓고
나 홀로 다녀오리라
달빛이 옹기종기 몸을 녹이는 숲길과
바람이 지친 다리 주무르는 대숲 지나
저 홀로 생겨났다 혼적 없이 사라지는 길을
오늘 밤만은 나 홀로 떠나야겠다
더이상 몸 때문에 마음이 눈물 올리지 않고
더이상 마음으로 저 바람에 몸 베이지않게
까까머리 숫별이 눈 부비며 새벽종 칠 때면
꿈결인 듯, 아무도 모르게 돌아와 있을 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고이 자거라
너희들과 가는 길은
이 세상 누구라도 가슴 치며 돌아볼 길
다시 걸어도 끝끝내 사무처 서러울 길
<이 환장한 봄날에, 박규리 시집, 사무친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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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 시인을 사실 잘 몰랐다.
페친이신 조상연 큰형님께서 20년 만에 나온 시집 [사무치다]가 너무 좋다고 하셔서, 전작주의라 시집을 검색하니 두 권이다.
첫 번째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를 먼저 읽었다.
시집을 다 읽고, 글을 쓰는 이 순간 새로운 시집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시 속에 삶의 모든 것이 담겼다.
스님과 세속의 경계에 서 있는 공양주 보살로서 단단하고, 공허하며 중심이 녹아 들었다. 그 모든 것이 시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작은 위로와 큰 깨달음을 준다.
덧) 현장에 일하면서 틈날 때마다 읽었다. 출간한지 20년된 시집을 읽고 감흥이 돋으니, 20년 만에 발간한 새 시집 [사무치다]가 기다려진다. 집에 가서 얼른 읽고 싶다는 생각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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