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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다 Jul 23. 2024

마루

  잠든 녀석을 안았다. 잠시 놀라 움츠리더니 고개를 든다. 긴장한 눈망울이 금세 안도의 표정으로 바뀐다. 그러더니 이내 혓바닥으로 내 손등을 핥는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새벽 시간,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반려견 마루가 반긴다. 얼른 들어오라며 꼬리가 끊어질 듯 흔들어댄다. 자동차가 아파트로 진입하면, 관리사무소로 연결된 영상전화에 차량 출입 알림이 화면에 떴다 꺼진다. 마루는 어떻게 그 신호를 감지하는지 내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린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마루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나 하고 거실로 들어서니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불러도 깨지 않아 몸을 건드리니 벌떡 놀라 일어나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그런 행동을 보여 혹시나 싶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마루가 몇 살인가요?”

  “15살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그럽니다. 건강은 이상 없어요. 잠 많이 자고 먹을 걸 탐낼 겁니다.”

  나는 어느새 인터넷에서 반려견에게 좋은 영양식품을 검색하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었다. 딸이 강아지를 키운다는 지인이 있었다. 하루는 택배가 왔길래 뭐냐고 물으니, 강아지 보약이라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차서 ‘회사 다니면서 월급 타면 엄마, 아빠 영양제 하나도 안 사주면서 강아지는 보약 먹이니? 내가 강아지보다 못하냐?’고 딸을 혼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

  나는 이 문장을 무척 좋아한다. 책 제목인 『옹동스』는 작가가 키우는 반려묘 ‘나옹’과 오래 벼르다 입양한 둘째 고양이 ‘은동’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가슴 찡한 한편의 우화 같은 이 책은 세상의 수많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TV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최애 드라마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도깨비’라고 말한다. 세 번 정도 연작으로 며칠 본 기억이 있다. 많은 장면이 좋았지만, 제일 선명하게 남은 것은 시각 장애 도우미견이다. 남자가 저승사자에게 어디로 나가면 되냐고 물었을 때,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면 된다고 했다. 문을 여는 그 순간, “멍멍”하고 입구에 앉아 있던 강아지가 반기며 짖었다. 생전에 함께 했던 시각 장애 도우미견인 ‘해피’였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먼저 온 게 마음에 걸렸는지 아까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은 해피가 더 잘 알 겁니다.”

  자려고 침대 위에 누우니 마루가 얼른 따라와 엉덩이를 머리 부근에 딱 붙이고 함께 눕는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강아지 체온은 평균 38℃에서 39℃다. 사람의 체온보다 높다. 신체접촉의 따뜻함은 감정적 안정과 함께 행복 호르몬이라고 하는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한다.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행복감을 높여준다. 더 중요한 건 교감이다. 교감은 공감을 전제로 한다.

  가족의 삶 속에서 반려견은 작은 천사와 같다. 함께 걷는 산책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 소소한 행복, 손끝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는 마음을 하나로 이어준다. 소소한 순간들과 온화함은 마치 사랑의 언어처럼 가족을 따뜻하게 한다.

  도시화와 가족 구조의 변화로 현대인은 외로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사회와 기술의 발달로 심화되는 문제다. 소셜미디어는 불특정의 사람들과 무수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찾는 이유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마루와 나는 비언어적 의사로 소통하고 있다. 갈등을 전제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표정, 몸짓, 눈 맞춤, 촉감 등 감정 전달이 된다. 단순한 애완동물과 주인 관계를 넘어, 깊은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정서적 교류를 한다. 사람에게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만족과 행복을 제공한다.

  마루는 내 곁에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개의 수명이 18년 정도라고 하니 이제 녀석과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먼저 저세상에 간다면 마루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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