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소통의 무모함보다 서로에게 스며드는 측은지심, 교감의 발화가 김결 시인의 시작법이 아닐까?
[또는, 눈사람의 기분]
우리는 텍스트예요 주기적으로
폭발하죠
사월에 눈이 내리기도 하고요
당신은 여전히 모르는 사건으로 남았죠
제발 얼룩을 읽어 주세요
들끓던 용암을 가라앉히는 오늘
눈 내린 불면에 로그인을 하고
거울 속의 분화구를 외면합니다
숱한 넷플릭스의 드라마와 마주하죠
바닥에 웅크린 나의 주인공이
사월에 내린 눈처럼 녹고 있고
대답할 의무도 없이 드라마는 끝이 납니다
사월의 눈과 여전히 모르는 당신에게
잠시 머물던 내가 눈사람으로 녹아 가죠
질 때 더 붉은 당신을 오려 붙여
텍스트를 읽는 내 눈동자가 젖어듭니다
날이 저물어요 당신은 낡고 나는 두려워요
계절의 터미널에서 갓 내린 커피를 마셔요
나를 저울질하며 주문을 걸죠
사월은 불타오르거나 녹아내리고
소리 없이 모란이 다녀가고
떠난 이와 남은 자가 일으켜 세운 터미널만 남았죠
이제 나는 누구인가요
[또는, 눈사람의 기분] P12, 시 전문
시집 전체를 흐르는 '당신'과 '너'는 어떤 실체를 의미하는 것일까?
기의의 전통적 관계를 해체하는 시인을 논할 때, 우리는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탐구자, 그가 열어놓은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언어라는 구조 속에서 통상적으로 고정된 기의를 해체하고, 기표가 가진 잠재력을 탐구함으로써 독자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선사한다.
김결 시인의 시는 마치 의미를 깨뜨리고 재조립하는 작업과도 같다. 전통적인 기의의 틀을 벗어난 시인의 언어는, 일상적 사물이나 개념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독자가 익숙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기표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독자를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 속으로 이끌어가며, 기의가 해제된 순간에 찾아오는 감각적 충격과 사유의 깊이를 선사한다.
시인의 시는 독자에게 고정된 의미의 안정감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단어와 구절이 품은 새로운 가능성과 맞닥뜨리며, 언어를 통해 무한한 해석의 여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마치 기존의 세계가 해체되고, 그 자리에 기표들이 춤추듯 배열된 새로운 창조되는 과정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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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단순한 의미 해독이 아니라, 언어의 근본적 가능성과 한계를 탐색한다. 기의를 해제하는 그 순간 시는 단지 표현을 넘어 하나의 사건이 된다.
독자는 사건의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사유와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초월한 의미를 가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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