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손수레 끌고 가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어준 여자분 사진을 보았다. 순간 언어가 가지는 확장성의 한계를 느꼈다. 사람과 사람과의 교감을 사진 한 장으로 느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뉴스를 검색하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이다.
시간 속의 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빛이라고 말한다. 초속 30만 km인 빛은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돈다. 달까지 거리가 약 38만 km이니 3초면 달까지 넉넉히 왕복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다. 장자의 『재유편』을 보면, 마음은 고개를 숙였다가 드는 순간 하늘과 땅을 두 번 왕래한다고 한다. 1초면 우주 한 바퀴를 돈다는 얘기다. 마음의 빠르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질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시간의 난센스일 수 있다. 빛은 시공간 차원의 이야기이고, 마음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니,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장자는 세상을 벗어난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비유해서 말했을 뿐이다.
비를 맞으며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워준 사진보다 더 교감하는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약 15년 전인 2007년 2월 6일 외신 보도를 통해 공개된 사진이었다. 5,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의 남녀 유골이 서로 꼭 껴안은 누워 있는 사진이었다. 전 세계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이탈리아 북부에서 발굴된 이 남녀의 사진을 보고 비록 뼈만 남은 모습이었지만, 사람들 마음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발굴팀은 이들의 사랑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변의 흙까지 통째로 박물관에 보존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신석기시대에 묻힌 사랑의 화석은 반만년의 세월을 헤치고 새로운 꽃을 피운 것이다.
시간을 가리키는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크로노스, 수평으로 흐르는 시간을 말한다. 하나는 카이로스, 수직으로 통하는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 해가 뜨고, 낮과 밤이 교차하고, 사계절이 지나는 달력 속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을 의미한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위아래로 높고 깊어지는 질적인 시간, 변화와 기회의 시간을 가리킨다.
크로노스의 1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365일이다. 카이로스의 하루는 1년보다 길 수 있고, 1년이 하루보다 짧을 수도 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마신 원효대사가 아침에 깨어보니, 시원하고 달게 마신 그 물이 해골에 괴인 물이었고, 잠을 잔 곳은 동굴 속이 아니라 무덤 속이었다는 것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크게 깨달은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묻지 마 범죄가 일어나고, 사회가 각박하다 못해 무섭다고 한다. 이기주의와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말한다.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면서 “교감”이라는 감정의 교류는 물질과 방송, 언론이라는 매체가 사람의 마음까지도 장악했다.
눈을 뜨면 자극적인 낚시성 기사는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며 마음을 메마르게 한다.
신석기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사람들은 유골에서 뼈가 아니라 사랑을 보았다. 발굴된 것은 수천 년의 세월에도 풍화되지 않은 사랑이었다. 장대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며 폐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씌어준 여자분의 사진은 배려와 존중,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도 사랑은 남는다. 사랑의 마음은 수천 년의 그 시각, 그 자리에 고여 있었다. 흐르는 시간 속에 흐르지 않는 시간이 거기에 있었다.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사진: 신문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