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는 정말 떠날 수 있을까

by 라니

그날도 야근이었다. 세 개의 프로젝트를 병행하던 시기, 눈 앞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걸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입사 초부터 마음 한편에 품고 있던 물음표였다. 적성에 딱 맞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만으로 3년쯤 일했으면 충분히 해낸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왔다. 하지만 점점 더 지쳐갔다. 영혼을 갈아넣듯 일하고 있다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게 느껴졌다.

연차가 쌓이고 연봉이 오를수록, 자리를 잡아갈수록 오히려 불안감이 깊어졌다. 해보고 싶었던 다른 일들이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음속에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라는 감정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본 댓글 하나가 마음을 흔들었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만족할 수 있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깊숙한 곳까지 박혔다. 나는 충분히 '카드'를 뽑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다양한 가능성을 체험하지도 않은 채, 벌써 내길을 정해버린 건 아닐까?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더 많은 카드를 뽑아보기로, 조금은 더 내 인생을 살아보기로. 마침 그 즈음,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접수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고, 비교적 인종차별이 적으며, 무엇보다도 어릴 적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오로라를 직접 볼 수 있는 나라. 이유가 충분했다.


"나 같으면 벌써 갔다. 넌 아직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


그 말을 해준 건, 함께 프로젝트를 하던 40대 PM님이었다. 뉴욕주립대 과정을 병행하며 자기 계발에 열심이던 그분은, 가족과 현실적인 책임이 많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내 상황을 부러워했다. 그 말이 마지막으로 나의 결심을 찍는 종지부였다. 이대로 머뭇거리다가는, 점점 더 움직일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인생이 80년이라면, 1~2년쯤은 나를 위한 시간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방향을 정했고, 마침내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인비테이션, 신체검사, 그리고 서류 준비

프로파일을 등록하고 나서부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들여다봤다. 주변 후기들을 읽고, '나도 오늘쯤이면 오지 않을까' 하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던 날들. 그리고 결국 도착한 인비테이션 메일. 그 순간의 벅참은 아직도 기억난다.

수락 기한은 10일. 수락 후 20일 안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서류 준비 기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신체검사를 미리 예약해 두고, 기한 마지막 날에 수락하는 것이 팁이었다. 나는 직장인이었기에 일요일 진료가 가능한 삼육서울병원을 선택했고, 다행히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잡혔다.

검사 당일엔 긴장 반 설렘 반. 간단한 신체 측정부터 흉부 X-ray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날, 증명사진 찍듯 꾸며 갔지만 결과는 자다 깬듯한 사진으로 남았다. 신체검사 확인서는 바로 출력됐고, 이메일로 PDF도 받을 수 있었다. 소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그 후엔 모든 서류를 정리해 제출하고, 캐나다 달러로 약 $341를 결제했다. 바이오매트릭스(지문 등록)는 서울 단암빌딩 5층에 위치한 비자센터에서 진행했는데, 직장인이라 반차를 내고 다녀왔다. 지문과 사진을 등록하고 나오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정말, 퇴사하는구나.


누군가는 응원했고, 누군가는 걱정했다.


"이력 꼬이는 거 아니야?"

"거기 가서 뭐 해 먹고 살 건데?"

"돈은 좀 모아놨어?"


현실적인 우려 섞인 질문들도 있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무모한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조용히 불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육아휴직처럼 생각할 테니, 다녀와."


팀원은 웃으며 말했고, 대표님은 먼저 워크퍼밋을 받아 몇 달 일해보고 안 맞으면 돌아오는 것도 방법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퇴사를 축하한다며 밥을 사준 팀원들, 마지막 출근 날 와인을 건네주던 대표님. 그 모든 마음들이 참 고마웠다.

모든 사람이 내 선택을 이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떠나기 전, 나의 삶을 다시 살아본 시간

퇴사 이후부터 출국까지의 시간은 마치 보너스 같은 시간이었다. 회사를 다닐 땐 늘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체력이 안 돼서' 미뤄왔던 것들을 원 없이 시도했다.

평일 오전엔 애견미용 학원, 오후엔 영어학원, 주말엔 국비지원 베이킹 학원을 다니며 그동한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 나갔다. 정신없이 배우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했던 시간. 그렇게 취득한 애견미용사 3급 자격증은 훗날 밴쿠버에서 애견미용 일일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든든한 시작점이 되어주었다.

그동안 마음 한켠에만 담아두었던 일들을 해보며, 살아 있음을 느꼈다. 지쳐 있던 나의 의지가 조금씩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혹시 지금, 캐나다 워홀을 준비하며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망설이고 있다면. 혹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두려움이 발목을 잡고 있다면.

이 글은 그런 당신을 위한 것이다.

실제 준비 과정에서 마주했던 크고 작은 시행착오, 선택의 갈림길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직접 다녀와서야 알게 된 현실적인 정보들을 정리해 나가며, 당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다.

막연했던 꿈이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내가 겪었던 고민과 두려움, 설렘과 희망이 이 여정의 든든한 참고서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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