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속으로 빠져드는 외돌개의그림자는 물결 소리에 한 층 더 외롭고 애절합니다. 가을밤의 적막함 속에 더욱쓸쓸한
내 마음의 투영이겠지요.
*삼매봉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외돌개는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섬의 모습이바뀔 때 생겨난 바위섬이라지요.
마치 섬에서 저 혼자 떨어져 나간 듯 홀로 서
있는 외돌개는 높이 20m, 둘레 10m의
기암절벽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작은 해송(海松) 몇 그루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낮에 와서 보면 외돌개를 감싸는 매혹적인 바다 물빛은 시시각각 눈부시기에 감탄을 자아냄과 동시에 고민에 잠기게 합니다.
바람과 햇살에 용솟음치는 물결의 신비로운 빛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듯 무심히 출렁이는 외돌개의 물빛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을 쉴 뿐입니다.
외돌개의 물빛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여기 서 있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일 수밖에 없음에 괜히서글퍼집니다.
사실 외돌개는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학창시절엔 소풍을 왔던 곳이고 가족나들이로
즐겨 찾는 곳이라 늘 마음이 편안한 곳이지요.
늦가을에 외돌개의 야경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을을 타는 성격이라가슴앓이가 싫기에 난데없이 외돌개에 가고 싶었습니다. 마침, 문학회 선배가 외돌개 산책 제의를 해오자 흔쾌히 응했습니다. 선배의 차에 동승하고 외돌개로 향했습니다.
외돌개엔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 쌀쌀했으나 노을빛이 너무 고와서 선배와 나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외돌개 산책로로 향하는 돌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식물에 해박한 선배 덕택에 주위의 나무와 풀, 꽃들에 대해 배웠지요. 덩굴지는 성질이 있는 후추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사촌뻘쯤 되는
천선과(天仙果) 나무, 한약재로 쓰이는 맥문동(麥門冬)과 으아리 (저슬사리(겨우살이)), 꽃꽂이용으로 애용(愛用)하는 외래종 식물인 엽란, 노란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털머위, 씨앗이 바늘처럼 생긴 도깨비바늘, 일본인들이 ‘똥' 발음이 서툴러 돈나무로 불리게 되었다는 똥나무, 지팡이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명아주,
제주에서 딸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심어서 딸이 시집갈 때 궤를 만들어 선물했다는 멀구슬나무, 바람결에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들, 그리고 씀바귀와 비름, 쥐꼬리망초 등. 그동안 숱하게 외돌개에 왔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외돌개가 있는 해안 절벽에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되뇌어 보면 어릴 때 접해온 정겨운 이름들이 건만,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미안하고 민망스럽기도
했지요. 이제 그 이름들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어느덧 초승달이 뜨고 산책로를 따라 드문 드문 피어있는
노란 감국(甘菊)이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우리를 반깁니다.
*돔베낭길 절벽 위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이 보입니다. 남녀 두 사람은 거친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바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이 만든 풍경에서 무엇을낚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세월을 낚고 있는 걸까요. 세상사의 시름을, 잃어버린 삶의편린들을 낚고 있는 걸까요. 점점 땅거미가 짙어옵니다. 돔베낭길
저편 마을의 불빛들이눈을 뜹니다. 아득한 수평선엔 고깃배들의 집어등이 번지고 은물결이출렁입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커다란 곰솔 나무 그루터기를 발견했습니다. 해풍(海風)과 설한(雪寒)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세월을 지키던 곰솔. 잘리기 전에는 아름드리 거목(巨木)이었을 곰솔 밑동이 무척 씁쓸합니다.
다시 외돌개, 외로운 바위 앞에 섰습니다. 바다 방향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윗부분은 마치 여인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삭정이 같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두 손 모아 하늘을 보며 애절하게 간구하는 듯한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과 닮았기에 가슴이 아립니다.
외돌개에는 역사와 관련된 *‘목호의 난’ 전설 외에도 ‘할망바위’ 설화도 있다지요.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할아버지를 그리며 통곡하다가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용수리의 절부암
다시 따끈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맑은 서귀포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합니다. 따뜻하고부드러운 커피 향을
음미하며 걸음을 옮깁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적요(寂寥)로 만난 외돌개,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외로운 바위 외돌개를 가슴에 담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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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돌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서홍동에 있는 자연명승지.
높이 20여 m, 폭7~10m의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지대에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돌기둥으로 수직의 해식 절벽이 발달한 주변 해안과 해식동굴이 함께 어우러져 특이한 해안절경을 연출하는 명승지이다. 2011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79호로 지정되었으며,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던할머니가 돌로 굳어 외돌개가 되었다는
할망바위 전설이 있다.
(출처: 다음-위키백과)
* 삼매봉: 서귀포 서쪽에 있는 외돌개 위편에 자리한 오름.
* 돔베낭길: 외돌개를 지나 서귀포 시민의 여름 휴식처인 속골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 목호의 난: 고려말기 탐라(제주도)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들이 고려에서 명(明)에 제주마를 보내기 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일으킨 난.이때 최영 장군이 범섬으로 도망간 이들을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놓고 최후의 격전을 벌였는데,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이러한 역사적 유래에 의해 외돌개를 장군석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용수리의 절부암: 한경면 용수리 지세길 포구 곁, 고목나무가 울창하고 바위가 많은 엉덕동산에 있다. 옛날 용수리에 강 씨 총각과 고 씨 처녀가 결혼해서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대(竹)를 베러 차귀섬 (죽도)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자 대성통곡을 하며 바닷가를 헤매며 남편을 찾던 부인은 실의에 빠져 엉덕동산 바위 위의 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남편의 시체가 엉덕동산 절벽 밑 바다에 떠올랐는데,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당산봉 양지바른 쪽에 나란히 안장해 주었다고 한다. 신대정원이 부임하고 나서 열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부인이 죽은 바위를
‘절부암 (節婦岩)’이라 명하고 열녀비를 세워 열녀제를 지내고 추모했다.
이후 고 씨 열녀가 죽은 절벽을 ‘절부암’이라 부르게 되고, 지금도 용수리에서 매년 삼월 보름날마다 열녀제를 지낸다고 한다.